기이한 이야기
메이 싱클레어 지음, 송예슬 옮김 / 만복당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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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엇은 오스카와 사랑에 빠졌지만, 그 남자로 인해 지루함을 느꼈다. 오스카 역시 헤리엇과 사랑에 빠졌지만, 그녀로 인해 지루함을 느꼈다. 막힌 공간 안에서, 매일매일, 두 사람은 서로에게 실로 대단한 지루함을 안겨주었다.

 

7개의 단편이 모두 기이한 현상을 이야기한다.

사후세계, 죽은 자의 영혼, 초자연적인 힘, 유령 등이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그로테스크한 그림들과 함께 다른 세계로의 여행을 하게 만든다.

 

상당히 철학적인 느낌을 받은 <절대적 세계의 발견>은 죽은 스폴딩씨가 자신을 마중 나온 아내와 친구를 보며 그곳을 지옥으로 생각했지만 그들은 불륜을 저지르고도 천국에 있었다. 스폴딩은 자신이 지옥이 아닌 천국에 왔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

그들이 천국에 온 까닭은 "아름다움을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천국은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꾸밀 수 있었고, 우리가 지옥으로 알고 있는 곳은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라고 말한다.

아름다움을 사랑하지 않고,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시 세상에 태어난다는 이야기가 이후의 많은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을 거 같아서 흥미롭게 읽혔다.

 

<희생자>는 21세기 범죄소설의 원조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약혼자가 떠난 이유가 자신이 모시고 있는 노신사의 조언 때문이라 생각한 스티븐은 그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자신의 범죄를 감쪽같이 은폐한다.

교살한 것도 모자라 목을 그어 피를 뺀 후 토막을 내어 채석장 굴에 버린다.

이 끔찍한 살해 이후 모든 알리바이를 완벽하게 꾸민 후에 그는 자신의 살인을 점점 잊어간다.

그가 보통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던 중 노인의 유령이 그를 찾아오는데...

 

<증거의 본질>

사랑하는 아내의 사후 재혼을 한 마스턴은 죽은 아내가 자신의 약속을 지키려 하는 걸 본다.

죽은 아내는 참한 여자와 결혼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여자와 결혼하면 그 반대가 될 거라고 생전에 말했다.

마스턴은 그저 육체적인 용도(?)로 결혼을 했고 그러자 그때부터 죽은 아내의 유령이 출몰하여 그들의 합방을 방해한다.

그러길래 괜찮은 여자를 골랐어야지. 마스턴!

 





그동안 애거사는 가엾은 밀리를 탓했었다. 하지만 밀리의 간섭과 하딩의 집요함을 극도로 위험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애거사 자신의 결점이었다. 결점만 없었어도 그들이 애거사 내면의 가장 깊은 평온까지 침범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신비한 힘이 그들을 막아주었을지도 모른다.

 

 

약간 정신과적인 해석이 돋보이는 작품 <크리스탈의 결점> 꽤 긴 이야기를 읽어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런 신비한 힘을 가진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쩜 애거사는 21세기에선 정신과 의사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의 막연한 공포와 그들의 정신을 붙잡아 주는 역할을 하고 있음으로.

신비한 힘으로 표현된 그것은 순수한 크리스탈이어야만 품을 수 있었는데 애거사에겐 결점이 있었다.

약간의 사이코적 공포감과 함께 정신 분석학적인 이야기가 마치 미스터리 드라마 한 편을 본 느낌이다.

 

이 단편들을 읽으며 죽음 이후의 세계와 유령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일찌감치 이런 이야기들을 할 수 있었던 메이 싱클레어의 솜씨가 참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이분은 어떤 세계에서 사셨길래 이런 이야기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처음엔 쉽게 몰입하기 어려웠다. 아마도 길게 풀어 하는 이야기가 짧게 끊어가는 이야기에 길들여진 내 눈에 조금 늘어지는 감을 주었다.

하지만 읽어가다 보면 그런 이야기 방식이 이미지를 더 극대화하고 상상력을 더 자극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좀 더 풍부하게 싱클레어가 그린 세계를 느낄 수 있었다.

 

고전적인 색다름을 원하시는 분들에게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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