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 - 삶과 책에 대한 사색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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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내 두 가지 주요 작업을 양립 불가능한 것으로 볼지 모른다. 미국 중산층 지식인 /아내/주부/세 아이의 엄마라는 직업과, 작가라는 직업을 말이다. 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게 쉽다고는 말하지 않겠지만, 해당하는 인생의 만년에 선 나는 그 두 가지가 어쩔 수 없이 부딪치긴 하지만 양립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많이 포기하지도 않았고, 예술을 위해 인생을 희생하거나 인생을 위해 예술을 희생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인생과 예술이 서로를 풍요롭게 하고 깊이 떠받쳐주었던 탓에, 돌아보면 다 하나처럼 보인다.

 

 

SF의 거장 르 귄을 소설이 아닌 글로 만날 수 있는 기회였다.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 이 책은 생전의 르 귄이 강연한 글들과 에세이 서평들을 모은 책이다.

그래서 그분의 평소 문학에 대한 생각과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어떻게 읽었는지, 일상의 모습들을 알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제안은 이것뿐이다. 괴로워하지 말고, 단절하라! 기업들이 얼마나 소란을 피우고 괴롭히고 광고로 우리를 묻어 버려도, 소비자에게는 언제나 저항이라는 선택지가 있다.

 

전자책과 종이책에 대한 르 귄의 이야기는 요즘 들어 전자책과 종이책을 혼합해서 읽고 있는 나에게는 지침서가 되는 말 같았다.

종이책을 선호한다면 온갖 꼬임에 넘어가지 말고 단절하라!

 

카테고리나 장르로 문학을 판단하는 건 쓸데없는 짓이에요.

 

 

SF 작가라는 타이틀로만 거론되는 르 귄은 장르문학으로 분류되는 것들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들려준다.

장르란 서점이나 도서관의 분류를 위한 편리함이지 이미 문학은 모든 종류의 이야기들이 합쳐지고 있기에 장르문학이라는 분류는 쓸데없는 짓이라고 말한다.

 

소설은 경험 없는 사람에게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최고의 수단을 제공합니다. 아니, 소설이 경험보다 훨씬 더 좋을 수도 있어요. 소설은 감당할 수 있는 크기에 이해할 수 있는 허구인 반면 경험이란 그냥 사람을 뭉개고 지나가서 수십 년 후에야 그게 어떤 일이었는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이해하면 다행이죠. 소설은 사실에 기반한 심리적 도덕적 이해를 제공하는 데 탁월해요.

 

 

가끔 소설만 읽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말을 들을 때가 있는데 르 귄의 이 말을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소설은 간접 경험의 산물이자 사실에 기반한 심리적 도덕적 이해를 제공하는 것이기에 아주 유용한 것이다.






나는 감탄스럽지 않은 책에 서문을 쓰거나, 강한 흥미를 느끼지도 않는 작가에 대해 길게 쓰거나 하지 않으므로, 여기 모은 글들은 내가 어떤 소설을 좋아하는지 슬쩍 보여준다.

 

 

 

르 귄의 서평들은 솔직하다.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언급했는데 그중에 마거릿 애트우드의 도덕적 혼란에 대한 서평이 눈길을 끌었다.

 

 

[도덕적 혼란]은 단편 열한 편으로 구성된다. 이것이 단편집일까, 픽스업일까, 스위트일까? 나는 스위트라고 생각한다. 스토리 스위트에서 가장 흔하게 쓰는 시멘트일 장소는 여기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이 단편들은 중심에 단일한 주동인물을 둔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 여성은 파악하기 어려우며, 변할 수 있고, 약간은 불안정하기도 하다. 이건 마거릿 애트우드의 책이니 당연하다.

 

 

애트우드는 결코 동시대 많은 작가들처럼 역겨운 잔인성에 탐닉한 적이 없다. 그녀는 예상 가능한 경로를 피하고, 능숙한 필치와 건조한 재치로 쓴다.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에 대해 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작가는 이런 작가야.

이 작가의 생각은 주로 이래.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하고 얘기한 적이 많다.

하지만 작품 속에 작가의 생각과 철학이 들어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 작품이 작가의 모습을 전부 투영하는 건 아니다.

르 귄의 글을 읽고 있자니 자신이 쓴 작품으로만 평가당하는 걸 아쉬워했다는 생각이 든다.

문학작품이 아닌 장르 소설에서만 그녀를 우대한 사람들의 평가에서, 자신의 작품이 문학의 대열에 끼이지 못한 시절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나는 거 같았다.

 

최근 들어 장르문학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당당하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바탕에 르 귄의 작품이 하나의 역사가 되었다는 사실을 그분은 아셨으리라 생각해 본다.

이미 가고 없는 그분의 글을 뒤늦게 읽게 되는 시간.

목록에만 두었던 그분의 책들을 이제는 만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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