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의 결함 5
이치은 지음 / 픽션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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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라고 물었을 때 대답할 수 없는 일을 하면서 스스로에겐 취미라 부르고,

로봇들이 그러면 결함이란 딱지를 붙이죠.

수소 충전소에서 하루에 한두 개의 풍선을 날리는 아사드.

아사드는 수소 풍선을 왜 날리고 싶었을까?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비명을 새기는 묘지 관리 로봇 뒤카스.

뒤카스라면 나에게 어떤 비명을 적어줄까?

음식 맛을 보고 재료를 알려주는 로봇 라블레는 어째서 음식을 탐하는 로봇이 되었을까?

민원을 제기하다 결함을 신고한 끼릴로프.

동물 수의사인 끼릴로프는 여행을 할 때 전원을 끄고 화물칸에 처박히는 것보다는 객실에 앉아서 가고 싶었을 뿐이었다. 단지.

아주 많은 로봇들이 짤막하게 등장하는 로봇의 결함.

그 로봇들이 가진 이름의 의미를 알게 되면 더 깊이 이 로봇들의 결함을 이해하게 된다.

새해 첫 리뷰로 이치은 작가의 로봇의 결함을 소개하고 싶었다.

간결하고 짤막하지만 쉽게 여운이 가시지 않는 이야기들 앞에서 먹먹할 때도 있고

왜 그러는지 궁금할 때도 있고, 마치 인간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인간 보다 더 나은 거 같고.

가끔은 섬뜩하기도 했다.

이 이야기엔 자살하는 로봇이 둘 나온다.

유서를 쓰고 스스로 전원 버튼을 꺼버린 그들의 모습에서 뭉글뭉글한 감정이 솟는다.

어딘지 모르는 곳

근 미래

로봇은 인간을 돕기 위해 많은 일을 한다.

자신이 매일같이 하는 그 똑같은 일을 앞에 두고 로봇도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까?

아니면 인간 곁에서 인간을 보면서 학습을 통해 인간화되는 것일까?

그저 나열한 이야기들 앞에서 정리되지 않는 감정들 사이로 막연한 미래를 '맛' 본다.

이 책에 나오는 로봇들은 어딘가에서 기계처럼 일하고 기계 대접을 받으며 무시당하고, 외면당하다 못해 결함으로 신고되는 사람들이다.

자기를 위한 변명도 용납되지 않는 무수한 결함들 앞에서 인간인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묘지에 비명을 적어주는 로봇.

기차표를 여행 가방 안에 숨기고 미로 속을 걷는 로봇.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자살을 선택한 로봇.

이치은 작가의 이 세계는 그래서 더 알고 싶어진다.

더 많은 로봇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진다.

결함이 신고된 로봇들은 어떻게 될까?

마리 8과 헨리는 같은 로봇일까?

나. 베아투가 꾸는 꿈은 무엇일까?

이름 속에 담긴 의미들이 중첩되면서 로봇에게 더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로봇의 결함.

이 철학적인 이야기를 읽고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

로봇의 결함들은 곧 나의 결함이기도 하니까.

그것이 결함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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