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완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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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한 시간 낭비가 이어질수록 피해자는 계속해서 는다. 무사안일주의의 귀결. 평화에 찌든 녀석들의 말로. 이 기회에 똑똑히 알아 두는 것이 좋다. 이것이 바로 이 나라가 처한 현실이다.


고나가와 시티 가든 스완.

백조의 호수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거대한 쇼핑몰에 4월 어느 일요일 무차별 총격전이 벌어진다.

범인들은 3D 프린터로 만든 총으로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쏘았다.

그렇게 참극을 벌여 놓고 그들은 자살했다.


그곳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그들을 모이게 한 사람들.

가해자가 없는 세상에선 피해자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이 질타를 받는다.


스완의 스카이라운지에서 범인이 머리에 총을 겨누고 엎드려 있는 사람 중에 죽일 사람을 고르라고 말했다.

이즈미는 그저 천장을 바라봤을 뿐이다. 누구와도 눈을 마주칠 수 없어서 돔으로 된 유리 천장에 비치는 푸른 하늘을 보았을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가 죽을 사람을 골랐다고 생각하며 공격을 가하기 시작한다.

수많은 기사와 댓글들이 연약한 소녀의 모든 것을 까발린다.


가타오카 이즈미.

백조의 호수 공연을 앞두고 주인공 자리를 따내려 열심히 연습하던 아이는 그날 이후 모든 걸 잃는다.

그날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스완 사건이 내게서 빼앗아 간 것은 비단 발레만이 아니다. 엄마의 마음, 엄마의 미소, 제대로 된 생활, 제대로 된 미래.



이야기를 읽으며 나도 모르게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뉴스와 인터넷 기사에 담긴 이야기들만으로 하나의 사건을 다 알았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그 상황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면서 타깃이 된 사람에게 나 역시 무분별한 이야기를 보탰었다.

스완을 읽으며 그것이 얼마나 잘못인지를 깨닫고 반성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면 이 이야기를 잘 읽은 것이 될까?


가해자가 자살하고 없는 사건.

무수한 피해자를 낳은 사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 데 책임질 사람들이 없는 무차별 총격 사건.


어떤 일에든 희생양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스완 사건에서 사람들은 이즈미를, 부상당한 채로 도망쳤던 경비원을 희생자로 삼았다.

과연 우리는 그들에게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 어디에도 진실은 없다. 나와 고즈에가 체험한 그날의 진실.


이즈미는 그날 고즈에가 불러서 그곳에 갔다.

자신을 왕따시켰던 고즈에가 그날 이즈미에게 보여주려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사실을 이야기하고, 사실을 알지 못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요!

그날 살아남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거짓말을 가지고 있다.

남들한테 다 말하지 못한 상황들은 그들 가슴속에서 그들 마음속에서 그들을 지배하고 있었다.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죽음을 알기 위해서 생존자들을 모임에 초대한 사람이 마련한 자리에서도 그들은 다 털어놓지 못한다.

만남이 거듭되고 서로가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도 각자의 이유로 그곳을 찾는 사람들.

생존자이지만 사망자 보다 못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날의 광경들, 그날의 상황들. 그날의 후회들이 그들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단지 그곳에서 살아났다는 이유로 단죄할 수 있을까?

매일 그날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어땠을까?를 생각하며 그 시간을 되풀이 살고 있는 사람들..


오승호 작가의 글은 처음이다.

이 글로 이 작가의 이야기를 다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읽고 온갖 생각을 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작가다.


우리가 떠안은 석연치 못한 감정. 뉴스와 주간지에서는 전하지 않은, 머릿속을 뱅글뱅글 맴도는 생각들. 결국 어떤 방법으로도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할 수는 없고, 그러니 우리는 앞으로 한눈에 봐도 알기 쉬운 흑과백으로 나뉜 세상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날 그곳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흑과백의 중간에 남겨진 사람들이었다.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양쪽에서 모두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는.


이즈미는 나아가는 길을 택했다.

세상에 진실 아닌 진실을 투척하고 자신의 인생을 살기로 결정했다.

회색 지대에서 그녀는 영원히 춤출 것이다. 오데트와 오딜을 번갈아 가며...


우리는 백조이자 흑조였다. 그 그러데이션 속에서 어떤 색이 선택될지는 우리 자신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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