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미화되었다
제페토 지음 / 수오서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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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그리 정신 맛 들인 자들에게

오늘도 사람은

싸게 먹힌다.


<저렴한 사람들> 시의 한 토막이다.

전국 소상공인들 빗속 대규모 집회 "최저임금 생존 위협"이란 기사에 달린 제페토의 댓글 시다.


인터넷으로 쏟아지는 기사들에 달린 댓글들을 읽는 재미를 느꼈던 적이 있었다.

촌철살인 같은 댓글들을 마주할 때마다 시원한 청량감을 느낄 때도 있었다.

악다구니 같은 댓글들 속에서 유머러스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댓글들은 숨은 고수를 만난 기분이었다.


사실 이 시집을 만나기 전까지 제페토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그가 남긴 댓글의 시를 본 적도 없었다.


시집에 담긴 기사와 그 기사에 남겨진 제페토의 시들은.


때론 가슴을 쥐어뜯고

때론 씀씀 쓰담쓰담하고

때론 바위처럼 단단한 마음을 말랑하게 한다.


뉴스와 기사를 읽으며 지난날을 복기해봤다.

어쩜 이리도 달라진 것은 어디에도 없는지...

그래도 계절은 가고 오고

꽃은 피고, 바람은 불고, 비는 내리고, 눈은 쌓이고

사람의 마음엔 생채기만 나불댄다.


시는

글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음이다.


말(글)은 가시 돋친 생명체다. 밖으로 내보내기에 앞서 구부리고 깎고 표면을 다듬지 않으면 필경 누군가를 다치게 한다.

비록 나의 글쓰기가 선한 댓글 쓰기 운동의 일환은 아니지만, 댓글이 미칠 영향을 생각하며 매 순간 조심하는 이유다.


기사보다 뉴스보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내뱉은 글들에 더 많이 아프고, 더 많은 상처를 받는다.

마음에 담긴 울분조차도

내뱉고 싶은 지껄임 조차도

말이 되었을 때는 공중으로 흩어지지만

글이 되었을 때는 사라지지 않음으로 더 깊은 각인이 된다.


그래서 제페토의 시를 읽으며 방금 읽은 뉴스와 기사에서 느끼던 아픔과 절망과 분노와 고통을 희석시킨다.

지나간 것들이지만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서 더 시름 거리게 하는 것들...

그것들 앞에서 제페토의 시를 읽으며 마음을 정리한다.


올겨울은 따뜻하겠구나.

어디선가 불 지피는 사람들이 있으니.


제페토 시인 역시 따뜻한 모닥불을 지펴준 사람이다.

어두운 댓글 세계에.

우리는 그 모닥불가에 두런두런 모여 앉아 세상사를 이야기하고

앞으로의 일들을 걱정하고

지금 일어나는 일들에 분노하고

그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세상살이의 시름을 덜게 된다.


세상이 각박해도

온기를 가진 사람들이 나눠주는 따스함이 있다.

그 따스함이 바로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다.


난무하는 댓글들을 경계하기 위해 댓글 창을 없앴다.

그래서 입지가 좁아진 댓글들은 더더욱 악랄하게 기승을 부릴 테세다.

그럼에도

우리에겐 댓글 시인 제페토가 있다.

그가 지핀 모닥불의 온기가 점점 더 타오르고 커져서 둘레를 넓혀가길 바란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 따뜻한 불의 온기에 마음을 쬐고 가길 바란다.


시가 주는 느낌을 이렇게 현실적으로 받아들인지 참 오랜만이다.

시는 살아있다는 걸 알려주고

세상의 온기가 남아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

누군가는 지저분한 흙탕물에서 진주가 되어가고 있음을 알게 해준 한 권의 시집.

우리는 미화되었다.


현실의 언어를 시어로 읽게 되면

그 순간 나조차도 미화(美花) 되지 않을까?

나에게 이 시의 제목에 쓰인 미화는 아름다운 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시집의 제목이 나에게는 이렇게 읽힌다.

우리는 모두 아름다운 꽃이 되었다...

결국 우리가 꽃보다 아름다워질 그날이 오기를...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았으나, 온전히 내 맘대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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