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리는 소
아이바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엘릭시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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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수차례 경제적인 이유가 국민 건강보다 우선되었다. 비밀주의가 정보 공개의 필요성보다 우선되었다.

그리고 정부관료는 도덕이나 윤리적 의미뿐 아니라, 재정적 또는 관료적 정치적 의미를 가장 중요시해 행동했다.


건강 악화로 한직으로 물러난 형사 다가와.

그에게 과장 미야타가 2년 전 미해결 살인강도 사건을 맡긴다.

정체불명의 복면 괴한이 술집에서 2명을 살해하고 돈을 훔쳐 달아난 사건이었다.

외국인 소행이라 잠정 결론을 내렸지만 범인의 흔적을 알 수 없는 미궁의 사건을 맡은 다가와는 자신이 가장 잘 하는 탐문수사를 시작한다.

그리고 이 사건은 초등 수사부터 잘 못 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단순 강도 사건인 줄 알았던 사건.

두 피해자 간에 아무런 연결도 없을 거 같았던 이 사건이 다가와에게 맡겨지는 순간부터 그 결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정육 부분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거대 체인 마트로 성장한 옥스 마트.

도시 외곽에 커다란 쇼핑몰을 지어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주변 상권을 모두 죽이고 홀로 독식하는 대형 체인점 옥스 마트.

그로 인해 소도시는 폐점된 가게들로 삭막해지고 도시 외곽의 쇼핑몰만 휘황찬란한 빛을 유지한다.

하지만 경제적인 여파로 인해 사람들의 씀씀이가 적어지고 줄어든 소비로 인해 매출이 급감하면서 옥스 마트도 고비를 겪는다.


어딘지 모르게 우리가 다 잘 알고 있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끝이 어떨지도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읽으며 구역질이 나오는 걸 참을 수 없었다.


미해결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형사 다가와와 옥스 마트의 비리를 파헤치려는 인터넷 신문 기자 쓰루타.

두 가지 관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가 은근 쫄깃하다.


제목 비틀거리는 소의 의미를 알게 되는 순간이 오면 정말 한동안 고기는 거들떠 보고 싶지 않게 된다.

고기류가 들어간 가공식품은 더더욱...

좌우지간 비밀 엄수를 최우선으로 해. 상대는 일반인이 아니아.

일본 최대 유통업체의 후계자이자 현직 장관의 조카라고.


정의의 편에서

힘없는 자의 힘이 되어 줄 누군가가 꼭!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 역시 믿을 게 못된다는 사실을 또 한 번 알게 되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소비자의 건강은 안중에도 없는 기업.

그 기업의 약점을 잡아서 자기 배를 불리려는 사람.

소신껏 자신의 일을 하고자 했던 사람.

발품을 팔아서 겨우겨우 진범을 찾아내는 형사.

소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자기들만 쏙~ 빠져나가는 대형 체인점의 비리를 파헤치려는 기자.

이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였다.


나는 이 이야기에서 그들의 이름을 달리하면 바로 우리나라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틀거리는 소를 믹서기로 갈아서 다른 식품 첨가물을 마구 넣어서 먹거리로 파는 인간들.

서로의 약점을 쥐고 서로의 이익을 위해 모종의 거래를 하는 인간들.

국민의 건강을 위한다고 말로만 뱉어 놓고 결국은 자신의 영달을 위해 눈 감고, 귀 막고, 입 닫는 인간들.


하나의 묻힐 뻔한 사건이 어마어마한 진실을 품고 사라졌다면 어땠을까?

그래서 진실은 언제나 고개를 들고일어나나 보다.


BSE.

광우병.

비틀거리는 소.


비틀거리는 소들이 인간의 식탁을 점령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금 당장 어떤 일이 눈에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후유증은 언제나 나중에 일어나니까.


우리의 먹거리는 안전할까?

우리가 먹는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는 안전할까?

우리가 먹는 가공식품의 재료들은 정말 안전할까?


이 이야기는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소재로 만든 이야기다.

그 일이 지금도 여전한지 우리는 항상 감시의 눈길을 멈추면 안 된다.


예전부터 해오던 생각이지만.

먹는 걸로 장난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형벌은 그자가 만든 음식을 매일 주는 것이다.

자신도 먹을 수 없는 음식을 많은 사람들에게 돈 받고 팔아먹는 인간성처럼 더러운 게 또 있을까!


대형 쇼핑몰에 갈 때면 마음이 풍족해진 듯한 착각에 빠져 있었어. 실상은 대기업에 좋을 대로 돈을 뜯기고, 연출된 환상에 사로잡혀 있던 건데도 말이야. 이 상점가처럼 제 분수에 맞게 이웃과 더불어 사는 게 제일 아닐까?

마지막 다가와의 말이 가슴에 사무친다.


결국 우리는 예전의 조금 불편했지만 서로의 눈빛을 볼 수 있었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대기업의 그늘에 가려져 사라지고 있는 것들을 되살릴 힘도 결국은 소비자에게 있는 것이니까.


때론 현명한 선택은 불편을 감내하는 것이기도 하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았으나, 온전히 내 맘대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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