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비늘
조선희 지음 / 네오픽션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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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어의 비늘은 백어가 처음 한 번만 주는 거야. 그것만 행운이고 나머지는 전부 불운을 가져오지. 백어의 비늘을 훔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화가 난 백어가 자기 비늘로 소금 도둑의 목을 뎅강 잘라. 내 목이 잘리게 생겼는데 어떡해. 살려면 내가 먼저 백어의 목을 잘라야지.


이 이야기를 관통하는 이 독백은 책을 읽고 나면 소름 끼치게 더 다가온다.

인간의 욕심이 불러오는 참사를 정당화시키는 인간 합리화의 정석인 저 말이 인간으로서 인간을 용서하지 못하게 만든다...


별어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무인도 백어도.

그곳에 어머니를 안치한 순하는 마을 사람들의 요청으로 이장을 하기 위해 별어마을을 찾아온다.

몇 년 전 순하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살해한 현장을 목격했다.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백어도에 돌무덤을 쌓아 시신을 안치했으나 백어도의 전설을 믿는 마을 사람들의 요청으로 뭍으로 이장을 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돌무덤을 드러낸 순간 믿지 못할 전설이 현실이 되어 버렸다.


백어의 전설은 사실이었다...



모든 사실은 이야기로 남는다. 이야기가 오래되면 함축과 상징으로 오그라들어 결국 아는 이만 아는 암호가 되어버린다. 머리와 꼬리가 떨어지고 어디서부터가 진실이고 어디서부터가 허구인지 전혀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용보는 대학동창 준희의 소개로 마리를 만난다.

지극히 평범한 용보는 마리에게 청혼을 하고 마리는 그 청혼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용보는 마리에게 작은 증표 하나를 받는다.

소금 결정체.

그때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인생은 때론 알지 못했던 그때가 가장 행복했었다는 걸 깨우쳐 준다.


내 소금만 손대지 마. 그럼 괜찮을 거야.


착하지만 성실하지 못한 남자는 당장의 행운을 놓치기 싫어 저 말의 의미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유명한 벽화 화가인 마리가 아무것도 내새울 거 없는 자신과 결혼하다는 사실이 그때는 가장 중요했다.

소금은 소금일 뿐.

무슨 대단한 가치가 있을까.

세상 만물의 가치는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것이지...


사람의 인연은 미래의 것만큼 과거의 것도 모호하다. 스쳐지나가는 모든 것의 의미를 집어내는 것은 무리다.

사람은 세상 모든 존재들을 잇고 있는 섬세한 섭리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


조선희 작가의 책을 처음 읽는다.

인어의 전설은 아주 많은 서양 이야기에서 다뤄졌고, 나는 그 서양 문학을 읽으며 인어에 대한 관념을 각인한 사람이다.

하지만 소금 비늘이라는 이 작품으로 나는 우리에게도 인어의 전설이 존재했고, 그것이 서양의 인어들 보다 훨씬 신비롭고, 훨씬 공포스럽고, 훨씬 슬픈 이야기라는 걸 각인했다.


서양의 장르문학에 길들여진 내 눈에 조선희 작가의 소금 비늘은 색다른 세상의 문을 열고 들어 간 느낌이다.


백어의 소금 비늘을 탐한 자 죽음으로 갚으리...


욕심은 훔치려는 마음을 자라게 하고

한 번 훔치고 나면 그다음은 당연한 게 되어 버리지...

인간의 탐욕과 멈출 줄 모르는 탐심.

백어는 착한 사람이면 되었는데... 욕심은 사람을 착하게 두지 않는다.

마리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착하고 능력 없는 남자가 가장 골치 아픈 남자라고.


현재는 모두 털리고 과거의 시간은 잘려 나가고 미래는 꽉 묶여버린.


노력 없이 거저 얻은 행운은 지켜지지 않는다.

지킬 능력이 안되는 사람에게 갔기 때문에.


백어는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사람들을 죽여가면서도 계속 인간으로 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마리는 '선택'을 했다.

'섬'을 위해...


정임도 '선택'을 했다.

'순하'를 위해.


선택 한 자와 선택받은 자의 조합이 오랫동안 행복하기를...


교묘하게 욕심을 피해 갔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게서 가진 자의 오만을 보았고

진실을 코앞에 갖다주어도 고집스레 내치는 사람에게서 무지의 무력함을 보았다.

속절없이 스러진 젊은 죽음 앞에서는 '딱! 한 번만' 이 가져오는 저주의 실체를 보았다.


소금 비늘은 인간 안에 잠재된 모든 습성을 적나라하게 까발린 이야기다.

묻혀 있던 전설을 현실로 만들어 낸 작가의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질 뿐이다.

지금은.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았으나, 온전히 내 맘대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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