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버나딘 에바리스토 지음, 하윤숙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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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부커상 수상작.

마거릿 애트우드와 공동 수상의 영예를 안은 버나딘 에바리스트.

재밌게도 이 두 분은 모두 여성의 이야기를 쓰신 분들이다.

참 상징적이다 두 사람이 공동 수상을 했다는 것은.


애트우드가 장르문학의 힘을 빌려 백인 여성들의 차별과 착취의 역사를 읊었다면

에바리스트는 흑인 여성들이 온몸으로 부르짖는 날것의 이야기로 차별과 눈물의 역사를 썼다.


비교적 미국계 아프리카인들에 비해 유럽계 아프리카인들이 덜 차별받았다고 생각해온 나의 생각에 반전을 준 이야기다.

12명의 여자들과 그녀들과 연관된 여자들의 이야기는 모두 지금도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사의 느낌을 준다.


영국은 아직도 여왕과 귀족이 있는 나라다.

겉으로는 전혀 차별하지 않고 오히려 차별을 경계하는 그들이 교묘한 눈빛과 교묘한 몸짓으로 차별해 온 세상이 지금도 건재해 있다.

미국의 흑인들이 노예제도를 철폐하고 싸우고 쟁취해서 지금의 자유를 누렸다면, 그래서 그들이 어딘지 모르게 투쟁적으로 보인다면

영국의 흑인들은 고요히 은근하고 교묘하게 차별에 대항하고 있다.

그들을 차별해 오던 백인들의 그 교묘함을 배워서 써먹는 중이랄까.


은행의 부지점장 자리에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오른 캐럴.

백인 남편의 열렬한 외조를 받으며 커리어를 쌓아가는 그녀이지만 매일 아침 일어나서, 고객을 만나기 전 거울을 보며 자기최면을 걸어야 한다.


나는 남들 앞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외모이고 호감을 주고 사교적이고 친근하고 승진할 능력이 있고 성공을 이룰 수 있다


글을 읽으며 혼란스러웠다.

흔하게 마주칠 수 있는 글들이 아니라서.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문체에 익숙해지면 알게 된다.

글 하나하나가 바로 그녀들의 외침이라는 것을.

그래서 이 글엔 마침표가 없다.

이야기는 끝나지 않으니까.


살아있었고

살아가고 있고

살아갈 모든 그녀들의 이야기가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작품이다.


남자들이 없는 세상.

여자들만의 공동체에서도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비단 성별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그야말로 젠더의 문제다.

인간에겐 그런 본성이 누구에게나 스며 있을지 모른다.

더 강한 사람 중에는 약한 사람을 길들이고, 세뇌시키고, 합리화하는 사람이 있으니.

도미니크와 은징가의 이야기에서 여자라서가 아니라 인간이라서 그럴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 족쇄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의지를 자신 안에서 끌어모아야 한다.




이 수많은 여자들의 서사는 내가 알고 있는 많은 것들을 달라지게 한다.

책을 읽는 동안 뭔가가 내 안에서 부서지고 있었다.

결국 이 이야기는 영국계 흑인 여성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니까.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와 착취와 편견의 실체들이 흑인 여성들에게 좀 더 가혹하게 느껴지는 것은

같은 여성이지만 백인 여성들에게 받는 차별적 요소가 더해졌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 작품은 여성의 이야기이자 젠더의 이야기다.

아니.

차별받고, 혐오 받고, 편견의 시선으로 보아지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토록 다양한 이야기를 수다 떨듯이 써 내려간 버나딘의 마음속엔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아직도 아우성을 치고 있을까?


다양한 이야기가 주는 다양한 삶의 형태에서

소수로 보이는 이들이 참고 견뎌내야 하는 이유 없는 시선들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내 시선에도 그런 것들이 있는지를 점검해 보고 싶었다.


그녀들의 신랄한 표현을 읽고 있자니

내 안에서 차곡차곡 쌓여져 온 관습적인 편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 심어졌던 내가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막연한 편견과 차별들.

아무것도 모르면서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편견과 차별은 무지에서 오니까.


그녀들의 다음 이야기도 기대해 본다.

직접 만날 수 없다면 문학의 힘을 빌려서라도 알아가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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