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웃는 남자 (1869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빅토르 위고 지음, 백연주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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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장난감이 되어야 할 운명에 놓인 아이, 그런 일은 실제로 있었고, 오늘날에도 일어난다. 무지하고 잔인한 시절에는 그것이 하나의 특별한 사업이었다. 위대한 세기라 부르는 17세기가 그런 시절 중 하나였다.

 

 

 

운수 좋은 이들이 벌이는 불운한 자들에 대한 착취.

 

 

콤프라치코스가 성행하던 시절이었다.

가난한 이들이 그들에게 아이를 팔고, 반역자의 아이들이 그들 손에 넘어가고, 덜 자란 아이들을 납치해서 고귀한 자들의 장난감으로 만드는 자.

그들이 성행했던 시절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아동 학대에 관한 법령이 실행되었을 때도 불행은 그치지 않았다.

법이 무서워 콤프라치코스들은 도망쳤고, 아이를 데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콤프라치코스로 오해받을까 봐 아이들은 버려졌다.

그렇게 버려진 아이가 있었다.

 

 

스틱스 강변에서 망자의 영혼이 육체와 이별하는 장면과도 같았다. 밀물에 잠기기 시작한 바위에 못 박힌 듯 서서 아이는 멀어져 가는 배를 쳐다보기만 했다. 아이는 이해하는 것 같았다. 무엇을 이해했을까?

 

 

 

 

어른들에게 버려진 아이는 걸었다. 배가 멀어지는 반대쪽으로.

매서운 바람과 추위가 몰아쳤지만 아이는 묵묵히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 눈밭에서 죽어가던 어린 생명을 구해냈다. 혼자서도 힘든 길을 아이가 아이를 안고 걷는다.

그들은 인간이 싫어서 늑대 호모와 함께 사는 우르수스를 만난다.

거칠기 짝이 없는 말투를 뿌려대지만 행동은 따스한 음식과 잠자리를 내어주는 우르수스.

그는 그날 두 생명체를 보듬었다.

입이 찢어져서 늘 웃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와 눈이 멀어버린 아이를.

그윈플렌과 데아, 우르수스 그리고 호모는 그렇게 만나 가족이 되었다.

 

 

 

1편과 2편으로 나뉜 이야기의 1편은 이렇게 끝나고, 중요한 인물들이 거론되는 2편의 절반은 인물들의 서사에 할당된다.

서사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위고의 문장력은 곳곳에서 호흡을 가다듬게 만든다.

가족이 된 그들은 유랑극단이 되고, 웃는 남자라는 별칭이 붙은 그윈플렌의 인기는 나날이 상승한다.

그리고 이야기에 빠질 수 없는 비극적 반전이 펼쳐진다.

 

 

다 가진 자들은 풍족하고 여유로우니 시기할 것도 빼앗을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순진한 생각인 걸까?

앤 여왕은 자신의 사생아 여동생이 누리는 모든 것들에 질투가 난다.

조시안은 태어날 때부터의 금수저인지라 모든 걸 누리며 살지만 그 당시 귀족들의 유희가 그런 것이라 음침하고, 기형이며, 어딘지 비정상적인 것을 탐한다.

더리모이어경은 귀족으로서 갖출 것을 다 갖추었지만 위장을 하고 천민들과 어울리는 취미를 가졌다.

그는 천민 사이에서도 귀족 사이에서도 모두 자신의 자리를 확보 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들의 모든 비밀을 거머쥔 남자. 비뚤어지고, 괜한 복수심에 들끊는 남자 바킬페드로.

이 남자가 이 모두의 운명을 손에 쥐었다.

 

한 사람의 얼굴에 그 사람 얼굴로 만든 가면을 씌우는 것보다 기발한 방법은 없을 것이다.

 

 

변형된 인간의 모습.

웃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표현할 수 없는 얼굴.

보기에 따라 기괴하기도, 처연하기도, 슬프기도 한 얼굴.

 

 

깊이와 통찰력 있는 문장 앞에서 한 번

방대한 이야기 앞에서 한 번

속절없는 운명 앞에서 한 번

심호흡을 해 본다.

 

 

데아를 떠나 방황했던 그윈플렌의 종착지는 떠난 자리였다.

하지만 그곳은 비어 있다.

눈이 아닌 영혼으로 자신을 보아주었던 데아가 떠난 자리에 미련이 있을 리 없다.

우르수스곁엔 결국 호모만이 남았다.

 

 

생각이 많아지는 작품이다.

시대적 배경에 걸쳐진 현재의 모습과 한 치도 달라지지 않는 상하의 계급적 차이.

더 이상 누릴 것이 없이 다 누린 자들의 비뚤어진 취미가 낳은 사생아들은 그렇게 광대가 되고 말았다.

진정한 사랑은 언제나 떠난 후에야 깨닫게 되고, 다 가졌어도 더 갖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인 것이다.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자는 왕도 여왕도 아니었다.

그들의 비밀을 손에 쥔 자였지.

 

 

비극처럼 보이지만 온당한 결과였다.

리뷰를 어떻게 써야 할지 알 수 없어 고민스러운 작품이었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읽었음에도 웃는 남자 앞에서 숙연해진다.

진정한 문장의 힘을 아는 사람의 글은 시대를 넘나들어 읽는 사람의 영혼을 건드린다.

천 페이지 넘는 분량을 읽고 나서 느끼는 희열은 금방 사라진다.

빅토르 위고라는 위대한 작가의 글을 각인했다는 마음에 더한 희열이 오기 때문이다.

이름만 들었던 웃는 남자.

우리가 얼마 전 영화를 통해 열광했던 조커의 모티브가 된 웃는 남자.

 

 

한 겨울

따듯한 벽난로 앞에서 이글거리는 불꽃을 앞에 두고 다시 한번 읽어 보고 싶은 작품이다.

느리게, 꼼꼼히 음미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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