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켄 리우 한국판 오리지널 단편집 1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 생각에 몸은 저 나름의 지능이 있다. 정신은 결코 하지 못할 방식으로,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말할 줄 아니까.

 

인간의 미래를 엿보는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12편의 이야기는 내가 아는 모든 상상력보다 한 단계 위에 있었다.

인공지능 기술이 가져오는 불멸의 삶.

디지털 이민자로 살 것인지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 것인지 택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나는 어떤 삶을 택하게 될까?

많은 인간이 디지털 이민자가 됨으로 인해 퇴보되는 문명.

그 문명을 이어가기로 결심한 사람들 그들의 선택은 옳은 것일까?

육신은 사라지고 정신만 남아 있다고 착각하는 인공지능들의 회유는 그 어떤 것보다 달콤하다.

가보지 않은 세상에 대한 환상은 달콤할수록 치명적이라는 것을 그들은 몰랐다.

 

켄 리우의 이야기를 읽는다는 건 미래로의 여행을 미리 하는 것과 같다.

 

나는 인류가 지금부터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배운 거 같다.

보통은 암울한 미래를 얘기하는 글들은 상당히 폭력적이고 거칠다.

켄 리우의 이야기에서는 그런 기운을 느낄 수 없다.

그의 철학적인 이야기들에선 온기가 느껴진다.

어떤 이야기에서도 "인간성"과 "인간애"에 대한 것들을 놓치지 않는다.

 

싱귤래리티 3부작은 나에게 더 넓은 세계관을 갖게 만들었다.

이 글들을 읽는 동안 나는 나의 한계치 보다 더 크고, 더 높고, 더 넓은 무언가에 마주 서 있는 느낌이 들었다.

 

심오하지만 어렵지 않고, 암울하지만 철학적이다.

 

거칠어진 마음을 다독여주는 글들 앞에서 인간으로서 잊거나, 잃어가고 있는 것들을 떠올린다.

밉상인 인간들마저 측은지심을 발휘하게 하는 글 앞에서 스스로 경건해진다.

어째서 켄 리우에게 열광하는지 이제야 알 거 같다.

 

테드 창이 이성적인 이야기꾼이라면 켄 리우는 감성적인 철학자 같다.

 

표지부터 신비함과 아름다움을 뽐내더니

표지에서 받은 그 느낌 그대로의 이야기가 나를 잠시 다른 세상으로 데리고 간다.

나는 그가 말하려는 바를 오래 음미하고 싶다.

그가 그린 미래에서 나는 인간성이, 이 짧은 육신의 시절이 왜 중요한지 절실하게 깨달아 갔다.

그 어떤 이야기에서 표현되는 세상의 종말 보다 켄 리우의 종말이 훨씬 조용하다.

하지만 그 잔인함의 강도는 훨씬 높다.

 

인조 피부 조금, 합성 고분자 겔 조금, 알맞은 수량의 모터와 영리한 프로그래밍 능력을 잔뜩 동원하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기술로 모든 상처를 치유하는 일.

기술로 모든 상처를 치유할 순 있지만 마음은 치유할 수 없다.

인간이기에.

 

어쩜 인간은 그 어떤 세상이 와도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불만족을 가진 사람으로 인해 인류는 또 다른 모험을 하겠지.

 

한국 독자들을 위해 그동안 발표되었던 개별 작품들을 묶은 이 단편집에서 그 어느 것도 버릴 것이 없지만

매듭 묶기와 모든 맛을 한 그릇에(군신 관우의 아메리카 정착기) 이 두 편의 이야기는 인간의 역사와 더불어 착취의 역사를 보여준다.

중국인 이민자로서 느끼는 그 어떤 것들이 참 고급스럽게 표현된 이야기라 생각한다.

 

빗소리를 들으며 켄 리우의 이야기를 읽었던 시간들이 좋았다.

비가 올 때마다 들춰보고 싶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