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현대문학 가가 형사 시리즈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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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마음에 들지 않았느냐고 다시 물어봤는데, 딱히 이유는 없다는 거예요.

아무튼 마음에 안 든다, 아무튼 마음에 안 든다, 그 말만 자꾸 하더군요.



가가 형사 시리즈 3번째 이야기는 악의다.

두 사람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번갈아 이어지면서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이야기가 뒤집어지는 묘미를 이 한 권에서 만끽했다.

게이고의 솜씨를 이제야 제대로 '맛' 본 기분이다.

노노구치의 수기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단순해 보인다.

히다카라는 유명 작가의 친구 노노구치는 히다카 덕분에 동화책을 낸 작가이다.

히다카가 캐나다로 떠나기 전 잠시 만나러 온 노노구치는 히다카의 냉혈한 모습을 본다.

자신의 마당을 어지럽히는 옆집 고양이에게 농약 경단을 먹여서 죽였다는 히다카의 말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각인시킨다.

그리고 그날 저녁 히다카는 시체로 발견된다.

노노구치와 가가는 예전 중학교에서 같이 교편을 잡았었다.

히다카의 살인 사건을 담당한 가가는 그곳에서 노노구치를 만난다.

언제나 사소한 것에서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가가답게 이 이야기에서도 남다른 트릭으로 모두를 속아 넘긴 범인의 수법에 유일하게 속지 않는다.

유명한 작가의 뒤에 고스트라이터가 있다.

친구의 아내와 불륜의 상대가 되어 친구를 죽이려고 한다.

그러다 도리어 친구에게 발목 잡혀서 그의 영원한 그림자가 된다.

노노구치가 그랬다.

히가타의 악랄함이 그를 그의 그림자로 만들었다.

순간적인 살의에 의해 히가타를 죽이게 된 노노구치는 시한부 인생이다.

위암이 재발해서 생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다. 그런 노노구치를 히가타는 놓아주지 않았다.

게다가 노노구치는 사랑하는 여자가 그 일로 자살을 했다고 생각했다.

노노구치는 자기 자신도 사랑하는 사람도 지키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살인은 벌어졌다.

근데.

정말 그게 다일까?


당신이 최대한의 집념을 기울여 만들어낸 프로그램은 히다카씨가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을 철저히 파괴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말이지요. 그리고 살인 또한 그 프로그램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노노구치 씨~ 그 솜씨로 스릴러를 한 편 써보지 그러셨어요? 그랬다면 대박 장르 작가가 되었을 텐데.

기록이란 살아남은 자의 것이라고 했던가!

노노구치의 기록은 독자를 들었다 놨다 한다.

게이GO에게 농락당하는 느낌이 썩 괜찮다.

이것은 반전이라는 말이 아까울 정도의 이야기다.

그런 이야기를 이렇게 슴덩슴덩하게 써 내려가는 게이고의 필력이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어디에나 있다는 학교폭력.

그것은 그 시절에 끝나는 과거가 아니다.

언제나 현재에서 불쑥불쑥 내가 가장 정점을 찍을 때 나타나서 나를 나락으로 끌고 간다.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지 말라 했다.

그토록 겪어 본 사람이.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사람이.

결국 자신의 과거 때문에 가장 소중했을 사람에게 더 없는 해를 입혔다.

"악의" 라는 단어가 이 책을 읽고 나면 다르게 느껴진다.

악의란 결국 스스로의 이기심이 자아낸 자기방어가 아닐까?

나쁜 마음은 스멀스멀 자라난다.

스스로 마음먹기도 전에 마음에 뿌리를 박아 버린다.

이 이야기의 끝 가가의 말에서 나는 악의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리게 됐다.

악의란

삐뚤어진 가치관이 심어 놓는 자기방어다.

스스로는 절대 자신의 잘못을 알 수 없다.

누구도 그 잘못을 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없다.

자기방어란 그런 것이니까..

가가도 결국 그 악의를 헤아리지 못했다.

그것은 평생 그의 가슴에서 녹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가가가 인간적인 형사로 남을 수 있는 지렛대가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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