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에서 생생하게 그려지는 이야기 때문에 영화 속 화면을 나 홀로 걷고 있는 느낌이다.
밴나를 따라가다 위도를 만나고, 위도를 따라가다 밴나를 만난다.
밴나의 환상과 위도의 환상은 닮았지만 닮지 않았다.
마을은 살인보다 더 추악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고, 어린아이의 기억을 묻어 두기 위해서 아이는 정신 병원에 보내졌다.
살인 사건의 단 하나의 목격자는 그렇게 미친년이 되어 무엇을 말해도 아무도 믿지 않게 되어 버렸다.
작은 마을일수록 통제하는 누군가가 있다.
한마을의 명줄을 한 손에 쥐락펴락하는.
그들은 다 알고 있었지만 눈 감았다.
그리고 원 없이 이용했다. 이용당하고 있는 줄도 모르게끔.
살인자 보다 더 무서운 말짱한 사람들의 마을 비말.
그곳에서 제정신인 사람들은 목숨을 잃었고, 눈 감은 사람들은 명맥을 이어갔고, 동조한 사람들은 마을의 유지가 되었다.
살인마가 오히려 더 불쌍하게 느껴지는 비말의 민낯.
이런 마을이 없다고 장담하지 못하겠다.
대도시 보다 더 살벌한 것이 바로 비말 같은 작은 마을이니까.
서로가 서로의 알리바이가 되어 철벽처럼 굳건한 곳.
그 굳건함을 깨려는 사람들은 더 이상 살아있을 수 없다.
그게 그들의 룰이니까.
평원에 울려 퍼지는 단말마의 비명보다 더 악랄한 사람들.
그들 보다 더 무서운 사람들은 살인의 추억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세상은 점점 더 비열해지고, 비말은 그 모든 것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한국에도 이런 스릴과 환상을 섞은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작가가 있다는 걸 알았다.
이제 온전한 언어로 환상과 스릴과 미스터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두온.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이름 석 자를 기억하자.
이제 겨우 가제본을 읽었을 뿐인데 벌써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살인의 추억 X 이끼 = 타오르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