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마음
이두온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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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관광의 묘미는 그런 것이니까.

 

비말.

이곳엔 평원이 있다.

그리고 그 평원엔 비밀이 숨겨져 있다.

어느 해 태풍이 몰아치는 날 그 평원의 비밀이 파헤쳐졌다.

 

마을을 떠난 사람들

그러나 그들은 마을 어귀도 벗어나지 못했다.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았을 때 그들은 그것을 돈벌이로 받아들였다.

 

썰물처럼 호시절이 빠져나가고, 쇠락해가는 마을에 먹고살 만한 일이란

그곳에서 벌어졌던 살인의 추억을 매해 곱씹는 것이었다.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은 비말의 살인 축제를 즐겼다.

살인자의 행적을 쫓고, 용의자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매해 범인에 대한 단서를 추정하여 범인일 거 같은 사람을 잡는 놀이.

살인이 놀이가 된 마을. 비말.

 

밴나, 오기, 나조, 노박, 위도, 사불, 야기, 이비

등장인물들의 이름까지도 싱숭생숭한 이 이야기는 읽기 시작하면 끝을 볼 때까지 내려놓기 힘들다.

다음 장에서 어떤 이야기가 벌어질지 알 수 없어서.

 

미치지 않았다고 난 아이큐가 138이라고 외치는 밴나는 나조씨의 살인범을 찾기 위해 마을을 들쑤시고

살인범을 팔아서 매해 축제를 벌여 지역을 살려 보려는 마을 사람들은 그런 밴나를 못마땅해한다.

살인범이 잡히기보다는 살인범이 활개치고 다녀야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으니까.

 

자식의 죽음을 파는 그의 어머니가 있었고, 살인마의 범죄를 파는 마을 사람들이 있었으며, 그것으로 먹고 자란 온 우리들이 있었다.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그려지는 이야기 때문에 영화 속 화면을 나 홀로 걷고 있는 느낌이다.

밴나를 따라가다 위도를 만나고, 위도를 따라가다 밴나를 만난다.

밴나의 환상과 위도의 환상은 닮았지만 닮지 않았다.

 

마을은 살인보다 더 추악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고, 어린아이의 기억을 묻어 두기 위해서 아이는 정신 병원에 보내졌다.

살인 사건의 단 하나의 목격자는 그렇게 미친년이 되어 무엇을 말해도 아무도 믿지 않게 되어 버렸다.

작은 마을일수록 통제하는 누군가가 있다.

한마을의 명줄을 한 손에 쥐락펴락하는.

 

그들은 다 알고 있었지만 눈 감았다.

그리고 원 없이 이용했다. 이용당하고 있는 줄도 모르게끔.

살인자 보다 더 무서운 말짱한 사람들의 마을 비말.

 

그곳에서 제정신인 사람들은 목숨을 잃었고, 눈 감은 사람들은 명맥을 이어갔고, 동조한 사람들은 마을의 유지가 되었다.

살인마가 오히려 더 불쌍하게 느껴지는 비말의 민낯.

 

이런 마을이 없다고 장담하지 못하겠다.

대도시 보다 더 살벌한 것이 바로 비말 같은 작은 마을이니까.

서로가 서로의 알리바이가 되어 철벽처럼 굳건한 곳.

 

그 굳건함을 깨려는 사람들은 더 이상 살아있을 수 없다.

그게 그들의 룰이니까.

 

평원에 울려 퍼지는 단말마의 비명보다 더 악랄한 사람들.

그들 보다 더 무서운 사람들은 살인의 추억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세상은 점점 더 비열해지고, 비말은 그 모든 것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한국에도 이런 스릴과 환상을 섞은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작가가 있다는 걸 알았다.

이제 온전한 언어로 환상과 스릴과 미스터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두온.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이름 석 자를 기억하자.

이제 겨우 가제본을 읽었을 뿐인데 벌써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살인의 추억 X 이끼 = 타오르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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