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초판본, 양장)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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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류함은 열린 채 헝클어진 상태였다. 정리를 좀 해야겠군.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 물건들을 정돈해야겠어.

 

 

지극히 평범한 문장 앞에서 가슴이 미어진다.

그것이 스토너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리뷰에서 스토너를 만났다.

한결같은 찬사 앞에서 생각했다. 그 이유를.

 

윌리엄 스토너.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과 대학에 들어간 청년은 자신의 앞날에 연로한 부모님을 도와 농사를 지을 거라는 흐릿한 미래만을 가지고 대학에 갔다.

그곳에서의 시간 동안 스토너는 자신의 길이 다른 곳에 있음을 깨닫는다.

과를 옮기고 졸업식날까지도 그는 부모님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아들이 자신들을 이미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부모님은 그저 묵묵히 아들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스토너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 대부분을 그저 묵묵히 받아들인 것처럼.

 

지극히 평범하고, 더할 나위 없이 평범한 문장들 속에서 벼려진 날카로운 지성들이 쉴 새 없이 공격해 오는 스토너.

문장 하나하나를 무심히 읽어가다가 도리어 그 문장들 속에 잠겨 들어가는 나를 바라본다.

지루할 거 같은 이야기가 지루할 틈이 없고,

평범할 거 같은 이야기가 결코 평범해지지 않는다.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기로 선택했는지,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잊으면 안 되네.

 

 

슬론 교수의 이 말은 어쩜 청년 스토너에게 각인되어 평생을 그렇게 살게 하는 바탕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때까지 스토너의 주위에서 그에게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말해주는 어른은 없었으니까.

 

한 사람의 일생을 앞에 두고 이렇게 복잡한 기분을 느끼긴 처음이다.

마치 내가 알고 있는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생전에 알지 못했던 그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게 되는 상황이 내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스릴러도 아닌데 쫄깃하게 긴장감 있고,

사랑 이야기도 아닌데 그 처연한 감정 앞에서 반발심과 동시에 수긍을 하고 있다.

 

아버지가 가엾어요. 편안한 삶이 아니었잖아요.

 

 

 

하나 있는 딸과의 시간조차도 마음껏 누리지 못한 스토너.

항상 어떤 결정 앞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 결정을 내리는 스토너가 답답하면서도 진정한 영웅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사리사욕을 뺀 담백한 이유로 인생을 결정해 가는 의지.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대하는 그의 변함없는 모습들.

어떤 격한 감정도 내보이지 않는 그 사람 스토너.

 

우리는 아주 작고 사소함에도 스스로를 내보이기 바쁘다.

로맥스처럼 철저하게 자신을 포장하고,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쳐서 온당치 않음을 온당함으로 관철시키려는 사람 앞에서

스토너 처럼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는 기억되는 사람은 아니다.

적어도 그가 속한 작품 세계에서는.

우리가 고전이라 부르며 항상 가슴에 새기는 작품들 중에는 스토너 같이 기억되지 못했던 작품들도 많을 것이다. 그 당시엔.

 

하지만.

시간이 흘러 시대가 바뀌고, 사람들의 생각이 더 다양해질수록 진가를 발휘하는 건

위대함을 떠난 지극히 평범함을 줄곧 유지하는 것이다.

스토너처럼.

 

그는 불굴의 의지로 자신의 인생을 살아냈다.

자신에게 가해지는 불행 위에서 스스로 원하는 길을 위해 고집을 꺾지 않고, 타협을 하지 않고, 무심하게 걷고 또 걸었다.

흔들림 없는 그 완고함에 나도 모르게 푹 빠지게 된다.

우리가 스토너에게서 보는 위대함은 바로 그 완고함이다.

 

감내하고, 인내하고, 참아내고, 견디는 힘.

 

읽고 싶었던 책을 읽었다.

절판된 초판본 표지를 그대로 복원한 책으로.

 

스토너는 자신의 인생을 용기 있게 살았다.

용기 없는 사람이라면 그 자리를 이탈했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그랬다면 스토너는 그저 가벼운 이야기로 남겨졌을 것이다.

스토너가 세월을 지나 많은 사람들의 인생 책이 된 것은 자신의 자리를 끝까지 지켜냈기 때문이다.

어떤 압력에도, 시련에도, 거짓에도, 세월에도.

그는 자신의 자리에서 결코 한 번도 도망치지 않았다.

 

그는 온전히 자신의 인생을 살아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는 시대에 스토너는 진정한 의미의 영웅이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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