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의 단짝 친구 다이애나를 만나고, 홍당무라고 놀리는 길버트와는 평생 말을 안하기로 마음 먹은 앤은
특유의 붙임성 있는 성격과 엉뚱한 상상으로 주변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매슈와 마릴라의 보호 아래 학교를 다니고, 점점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앤.
앤이 사고를 칠때마다 못마땅해 하면서도 누가 앤에 대해서 뭐라하면 서슴없이 앤을 편들어 주는 마릴라의 모습을 잘 표현해내어 인상적이었다.
처음엔 만화영화에서 보던 앤의 모습과는 달리 뭔가 더 뾰족하고, 긴 얼굴에 성깔 있어 보이는 그림체가 영 달갑지가 않았다.
하지만 계속 읽다 보니 오히려 이 그림 속의 앤과 다른 캐릭터들의 모습이 훨씬 생동감 있고, 사실적인 느낌이 들었다.
왠지 앤의 표정들이 더 풍부하고 익살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자꾸 보게 되었다.
많은 분량의 이야기들을 함축 시켜서 한 권의 그래픽노블로 만들어 낸 머라이어 마스든의 각색과 브레나 섬러의 그림이 서사보다 더 많은 것을 보여주는 거 같다.
엉뚱한 상상과 공상으로 매번 황당하면서도 깜찍한 에피소드를 남기는 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사건들로부터 스스로 반성하면서 깨달음을 얻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시대에 상관없이 앤을 사랑하는 거 같다.
아무리 목석같은 사람이라도 앤의 수다와 엉뚱한 상상 앞에서 무너지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인상적인 부분은 마릴라가 자신의 로맨스를 이야기하는 부분이었다.
블라이스씨와 좋은 사이였지만 고집 때문에 서로를 등지고 말았던 시간.
그 시간은 이후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마릴라는 앤이 자신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가슴 깊은 곳에 간직한 이야기를 꺼냈을 것이다.
앤과 길버트가 마릴라와 블라이스씨의 이루지 못한 "그 무엇" 을 이루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낯설었던 그림체가 책을 다 읽다 보면 너무 좋아진다.
마치 앤이 책 안에서 마구 움직이는 느낌을 받았던 빨강 머리 앤 그래픽노블.
원작을 읽은 사람들에겐 생동감을.
아직 원작을 읽지 않은 사람에겐 앤을 만나고 싶다는 충동감을 주는 그래픽노블이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 앤을 만화영화로만 보고, 축약본으로만 읽었지 원작을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다.
이 사랑스러운 빨강 머리 소녀에 대해 왠지 낱낱이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원작과 나란히 책장에 꽂아야 할 보석 같은 그래픽노블이라는 말에 진심 공감한다.
그래픽노블은 꽂아 두었으니 이젠 원작을 꽂을 차례다.
엄마와 딸이 함께 보기에 좋은 그래픽노블로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