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지 모르게 끈적하면서도 시크한 느낌들이 머릿속에 달라붙어 있는 이야기.
범죄소설가들의 범죄소설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장파트리크 망셰트의 대표작.
웨스트코스트 블루스.
생각보다 얇은 책을 받고 읽어 가다 보면 쉽게 생각하게 된다.
가볍고, 스피드한 이야기겠군.
스피드한 이야기는 맞지만 가벼운 이야기는 아니다.
70년대 배경의 프랑스는 지금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 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임원인 주인공 제르포.
살짝 갱년기가 왔나? 싶은 이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남자는 고속도로를 달리다 사고를 당한 차를 발견한다.
그냥 쌩~ 지나가고 싶었지만 혹시나 사고 차에서 자신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강박에 차를 세우고 운전자를 태워 병원 응급실에 내려놓는다.
딱히 일반적이지 않은 제르포의 무심한 행동들이 그에게 살인 청부업자들을 불러올 줄이야!
응급실에 사고 차량 운전자를 내려놓고 시크하게 사라진 제르포는 그 운전자가 총상을 입은 것을 몰랐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 이후 제르포는 두 딸과 아내와 함께 휴가를 간다.
휴가지 바닷가에서 그는 무지막지하게 그의 목을 눌러대는 2인조에 의해 익사할뻔한다.
겨우 벗어난 그는 아무 말 없이 휴가지를 떠나 파리로 돌아온다.
그를 추격하는 덤앤더머 청부업자들도 제르포를 따라온다.
그리고 그들은 제르포를 공격하다 한 명이 불타는 주유소와 함께 사라지고 한 명만 간신히 탈출한다.
제르포는 사력을 다해 도망치지만 그는 운이 없었다. 아니 운이 좋았나?
제르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아직도 고리타분한 동양의 전통적 가치관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프랑스의 그 자유분방함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런 상황이면 보통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할 텐데.
가족에게 먼저 연락해서 대피시킬 텐데.
어떻게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텐데.
우리의 주인공 제르포는 다른 길을 걷는다.
그게 바로 망셰트의 매력인가 보다.
모두의 예상을 깨는 전개.
곳곳에 심어 놓은 살벌한 표현들.
아무런 해도 끼친 적 없는 보통 사람에게 가해지는 알수없는 폭력.
보통은 기승전결식으로 누가? 왜? 어째서?누구를? 어떻게?라는 이야기가 있다.
제르포가 어떤 이유로 쫓기는 상황인지, 범인은 왜 제르포를 쫓는지.
이 이야기엔 그런 친절이 없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거의 끝나갈 즈음에는 어떻게 마무리되는지가 걱정될 정도였다.
예기치 못하게 마주하게 되는 폭력.
제임스 본드도 아니면서 사람 죽이는 일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주인공.
개성만점인 캐릭터들.
그 와중에 제르포의 아내 베아는 어째서 그리 조신하게 기다렸던 걸까?
한 여름밤
뜨겁게 달구어진 도로가 식어질 무렵
최고 속도로 마구 달려가는 고속도로가 떠오르는 이야기.
웨스트코스트 블루스.
처음 맛보는 프랑스 누아르.
이런 것이구나.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이 기막힌 이야기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