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 대하여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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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과거의 메어리이자 반복이다. 슬픔도 없다. 순전히 죽음을 앞둔 아주 작고 마른 고양이 때문에 엄청난 괴로움, 외로움, 배신감 속에서 몇 날 며칠 눈물을 흘리던 오래전 기억과는 조금 다른 경험 앞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도리스 레싱의 고양이에 대하여는 1967년, 1989년, 2000년에 발표한 에세이를 하나로 묶은 것이다.

19호실로 가다로 많이 알려진 도리스 레싱이 자신이 키우던 고양이들을 관찰하고 쓴 에세이다.

[특히 고양이는]

 

어린 시절 아프리카에서 살던 시절에 온 집안을 점령했던 고양이들을 처리했던 이야기들이 인상적이다.

자연 그대로의 상태.

하지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고양이들을 감당하기 어려워 그들에게 총을 겨누었던 어머니.

동물을 죽이는 일이 집안일을 맡았던 어머니에게 주어지고, 어머니는 결국 어느 주말 자신의 짐을 남편에게 맡기로 집을 비운다.

고양이들을 방에 가두고 그곳에서 들리는 총소리가 집안을 가득 메우던 풍경.

그런 야생의 땅에서 문명의 도시로 돌아온 그에게 도시의 고양이들은 색다름이었다.

 

누군가 키우다 버린 고양이

주인 없이 도시를 배회하는 고양이

자연 속에서 제멋대로 야생을 탐하던 고양이들만 보다 도시 속에서 사람에게 길들여진 고양이들은 왠지 서글픔을 주었다.

인간의 편의에 의해 거세당한 고양이들.

그러고 싶지 않지만 도시에서 고양이를 키우려면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

 

세심한 관찰력으로 고양이들의 행동을 지켜보며 그것을 글로 써 내려간 레싱의 글들은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고양이에 대한 경이로움을 주기 충분하다.

레싱의 글로 남겨진 고양이들은 도도하고 우아하며 말끔하고 영리하다.

유일하게 인간을 집사로 만들어 버리는 동물. 고양이.

 

나는 원래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서워한다.

앙칼진 울음과 사악미가 느껴지는 모습 때문에 나는 그냥 냥이가 무섭다.

레싱의 글에서 냥이는 다 생각이 있다.

쳐다보는 눈빛, 가르랑 거리는 소리, 스치는 몸짓에서도 다 자신만의 의사 표시가 있다.

레싱의 고양이들을 본 적 없지만 그 고양이들의 모습이 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릿속에서 같이 움직인다.

 

이런 것이구나. 레싱을 읽는다는 건.

 

[살아남은 자 루퍼스]

 

길고양이었는지, 버림받은 고양이었는지 분명치 않았던 루퍼스.

아프고 노쇠한 몸으로 레싱의 집을 찾아와 갈증을 채웠던 루퍼스가 결국 레싱의 부엌 의자 하나를 차지하고

레싱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끝없이 다른 고양이들과 대치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 모든 일이 진행된 곳은 부엌, 그중에서도 주로 녀석의 의자 위였다. 녀석은 그 의자를 떠나는 것을 무서워했다. 작지만 녀석만의 장소. 녀석이 매달릴 수 있는 삶의 발판.

 

 

 

 

 

지능적인 루퍼스의 행동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언제든 쫓겨 날 수 있는 상태에서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는 근성이 루퍼스라는 고양이를 굉장히 매력적으로 바꾸어 놓는다.

 

녀석이 왜 이러는 걸까? 계획을 세우고 계산적인 행동을 하는 법을 어떻게 터득했을까? 어떻게 해서 이처럼 생각하는 고양이가 되었을까?




루퍼스는 떠돌이 고양이었다가 레싱의 집으로 들어온 지 몇 주 만에 응접실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한 고양이가 된다.

원래 있던 부치킨과 찰스를 제치고.

고양이 세계에서의 묘한 알력을 보는 재미가 있다.

그래서인지 이 루퍼스에게 나는 자꾸 마음이 갔다.

생존법을 터득한 이 녀석이 불쌍하고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하다.

 

[엘 마니피코의 노년]

 

부치킨의 또 다른 이름이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던 부치킨은 어깨뼈에 암에 걸려서 앞다리 전체를 제거해야 했다.

세발의 부치킨.

이 녀석의 고통을 견뎌내는 의연한 자태를 보며 고양이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다.

포기하지 않는 의지.

자신의 남은 다리로 의연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참 감동적이다.

 


녀석은 얌전했다. 그런데 어느 날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밖을 내다보니, 녀석이 세 다리로 균형을 잡고 고개를 들어올린 채 생전 들어 보지 못한 소리로 울부짖고 있었다. 일부러 연극하듯 지르는 소리가 아니라,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가슴에서 우러나온 소리였다.



다리를 잃고 대변을 보고 나서 흔적을 지우려고 애쓰는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

원래 어깨가 있던 자리의 근육들이 움직이고 있지만 그 자리는 텅 비어 있다.

자신의 뒤처리를 스스로 하지 못하게 된 고양이의 당황한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고양이에 대하여.

나는 고양이를 무서워하고 길러 본적도 없지만 이웃집에서 잠시 빌려왔던 고양이와 아무런 경고 없이 집에서 마주쳤던 순간의 오싹함이 아직도 남아있다.

검은 고양이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부엌 한켠의 창고.

생각 없이 들어갔다가 고양이와 마주치고 기겁을 하게 놀라서 소리를 지르던 그때의 기억이 내게 있는 고양이의 기억이다.

 

내 기억은 공포로 얼룩졌지만

그 기억에 대한 위안을 이 책을 읽으며 받았다.

나만큼 그 검은 고양이도 놀랐을 것이라고 레싱이 내게 말해주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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