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호실로 가다로 많이 알려진 도리스 레싱이 자신이 키우던 고양이들을 관찰하고 쓴 에세이다.
[특히 고양이는]
어린 시절 아프리카에서 살던 시절에 온 집안을 점령했던 고양이들을 처리했던 이야기들이 인상적이다.
자연 그대로의 상태.
하지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고양이들을 감당하기 어려워 그들에게 총을 겨누었던 어머니.
동물을 죽이는 일이 집안일을 맡았던 어머니에게 주어지고, 어머니는 결국 어느 주말 자신의 짐을 남편에게 맡기로 집을 비운다.
고양이들을 방에 가두고 그곳에서 들리는 총소리가 집안을 가득 메우던 풍경.
그런 야생의 땅에서 문명의 도시로 돌아온 그에게 도시의 고양이들은 색다름이었다.
누군가 키우다 버린 고양이
주인 없이 도시를 배회하는 고양이
자연 속에서 제멋대로 야생을 탐하던 고양이들만 보다 도시 속에서 사람에게 길들여진 고양이들은 왠지 서글픔을 주었다.
인간의 편의에 의해 거세당한 고양이들.
그러고 싶지 않지만 도시에서 고양이를 키우려면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
세심한 관찰력으로 고양이들의 행동을 지켜보며 그것을 글로 써 내려간 레싱의 글들은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고양이에 대한 경이로움을 주기 충분하다.
레싱의 글로 남겨진 고양이들은 도도하고 우아하며 말끔하고 영리하다.
유일하게 인간을 집사로 만들어 버리는 동물. 고양이.
나는 원래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서워한다.
앙칼진 울음과 사악미가 느껴지는 모습 때문에 나는 그냥 냥이가 무섭다.
레싱의 글에서 냥이는 다 생각이 있다.
쳐다보는 눈빛, 가르랑 거리는 소리, 스치는 몸짓에서도 다 자신만의 의사 표시가 있다.
레싱의 고양이들을 본 적 없지만 그 고양이들의 모습이 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릿속에서 같이 움직인다.
이런 것이구나. 레싱을 읽는다는 건.
[살아남은 자 루퍼스]
길고양이었는지, 버림받은 고양이었는지 분명치 않았던 루퍼스.
아프고 노쇠한 몸으로 레싱의 집을 찾아와 갈증을 채웠던 루퍼스가 결국 레싱의 부엌 의자 하나를 차지하고
레싱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끝없이 다른 고양이들과 대치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