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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호흡의 필요
오사다 히로시 지음, 박성민 옮김 / 시와서 / 2020년 5월
평점 :
너는 어느 날 갑자기 어른이 된 게 아니었다. 문득 정신이 들어 보니, 이미 어른이 되어 있었다.
'되었다'가 아니라 '되어 있었다'.
문장을 따라가다 나도 어른이 된 순간을 짚어 본다.
어느 날 문득 나도 모른 사이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때 일지도 몰라.
하나에서 아홉 개의 글을 읽어가며 나는 더디게 어른이 되어갔다.
어딘지 모를 순간
어떤 때인지 모를 시간
어느 곳인지 알 수 없던 공간에서 나도 그처럼 어른임을 느꼈다.
일상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들이 담담하게 그려진 풍경 속에서 잠시 마음을 산책했다.
작가의 기억 속을 걷다 온 기분이 한가롭다.
너라는 한 사람밖에 될 수 없었다. 그걸 알았을 때, 바로 그때였다.
어른의 모습으로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는 어린 나를 본다.
한 번도 되돌아보지 못했던 내가 이 글 안에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한 장 한 장
넘어가는 문장을 바라보며 어느 순간 깨닫지도 못하고 어른이 되어 버린 서툰 나를 다독거린다.
한 명의 아이가 아니라, 한 명의 어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순간.
나조차도 모르고 지나쳤던 그 순간을 이제야 이해받고, 이제야 위로받는다.
심호흡의 필요.
삶의 매 순간마다 필요했을 이 숨조차 남 들을세라 조용히 품어왔을 수많은 이들에게
가만히 그렇게 어른이 되었노라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그랬던 거라고. 가만가만 읊조려 주는 목소리 때문에 나보다 지혜로운 어른에게 위로받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큰 나무 밑에 무엇이 있을까.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지만, 나무 크기만큼의 침묵이 있다.
오사다 히로시는 일상의 단어들을 가져다 문장을 만들었다.
지극히 당연한 줄로 알았던 것들을 마치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벅찬 순간이었다.
처음 만나는 작가의 글은 가끔 나를 흔들 때가 있다.
평범한 문장들인데 그것들이 모여 마음을 흔든다.
공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 누구의 것도 아니었던, 아무것도 없던 공터에는, 다른 어디에도 없던 것이 있었다. 너의 자유가.
언젠가 느꼈을 나의 느낌은 흩어져 공기 속으로 사라졌지만
오사다 히로시는 그 느낌을 담아 문장을 만들었다.
그래서 그의 글들을 읽다 보면 어딘가에서 홀로 서성이고 있던 잃어버린 나를 만나는 느낌이 든다.
내가 잊고 있었던 나.
어딘가에 흘려 버리고 잃어버린 줄도 몰랐던 나와 산책을 다녀온 지금
곁에 두고 마음이 산란해질 때 꺼내 볼 책이 하나 늘었음이 고맙다.
일본 작가에 대한 나만의 편견을 가차 없이 녹여내는 시와서의 책들은
그렇게 내게 특별해지고 있는 중이다...
나를 찾는 시간이 필요하신 분들에게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