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나 쇼팽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 3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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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참상을 목격한 쇼팽의 분노,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무고한 이들을 바라보던 쇼팽의 슬픔이 미사키의 연주 속에 깃들어 있었다.

 

읽는 내내 음악이 흐르는 추리소설.

 

음악 이야기인가 추리소설인가.

잔인한 테러의 참상 속에서도 이 책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건 책속에 흐르는 쇼팽의 음악 때문이다.

마치 음악을 눈으로 보는 듯한 유려한 표현들에 매료됐다.

이 작가는 피아노를 전공한걸까?라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는 문장들이다.

쇼팽의 음악을 틀어 놓고 읽을 생각이었지만 오히려 음악이 방해가 될 정도였다.

마치 글로써 쇼팽을 완전히 마스터한 느낌이랄까?

 

일본을 대표하는 추리소설 작가로 명성이 자자한 나카야마 시치리.

그는 클래식과 미스터리를 접목시켜 음악 탐정이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 냈다.

내게는 이 시치리를 처음으로 만나게 해준 작품이 바로 <언제까지나 쇼팽>이다.

 

미사키 요스케.

돌발성 난청 장애를 가진 그가 폴란드에서 열리는 쇼팽 콩쿠르에 참가한다.

폴란드는 테러와의 전쟁을 겪고 있는 나라였다.

대통령 전용기가 폭파되고, 도시에서 크고 작은 폭탄 테러로 어수선한 가운데 치러지는 쇼팽 콩쿠르.

콩쿠르가 시작되고 출연자 대기실에서 열 손가락이 모두 잘린 형사의 시체가 발견된다.

범인은 '피아니스트'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걸 아는 형사가 죽었다.

콩쿠르는 이대로 계속될까?

 

폴란드 쇼팽 콩쿠르.

그곳에 참가한 폴란드의 기대주 얀 스테판스는 4대째 내려오는 음악가 집안이다.

스승이 콩쿠르의 심사 위원장이고 아버지가 그를 훈련시키지만 딱히 쇼팽에 대한 본인의 의지를 갖지 못한 얀은 대회에 대한 부담감과 아버지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어 한다.

하지만 반항하지 못하는 열여덟의 소년은 테러 현장에서 살아남으면서 마음과 태도에 변화를 느낀다.

 

얀의 시선으로 말해지는 이야기에서 미사키는 조연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었다.

주인공의 활약이 거의 없는 주인공이라니! 다른 추리소설과는 다른 방식의 서술이 독자를 더 매혹시킨다.

 

폭탄이 터지고, 도시는 아수라장이 되어도 쇼팽 콩쿠르는 계속된다.

쇼팽에 대한 연구를 작가가 얼마나 치밀하게 했는지 이 이야기 한 편으로 쇼팽에 대한 인간적인 면과 음악가적인 면모를 마치 다 알아 버린 기분이 든다.

그만큼 쇼팽에 대한 절절함이 이 이야기 안에 담겨 있다.

그건 쇼팽의 이야기이자 폴란드의 이야기며, 얀의 이야기이자, 미사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완고할 정도의 투지.

쓰러지고 또 쓰러져도 끝까지 다시 일어서는 불굴의 영혼.

그것은 폴란드의 국민성과 정확히 겹친다. 그러므로 미사키의 연주에 폴란드 청중들이 동조하는 것이리라.

 

 

쇼팽의 음악을 이야기하느라 추리소설의 본래의 성질에 대해서는 대충 넘어간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주인공 미사키의 활약이 별반 없다가 나중에 짠~ 하고 나타나는 느낌도 있다.

그럼에도 굉장히 서정성 넘치는 추리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주인공의 시선이 아닌 제3자의 시선으로 보는 주인공의 모습은 생소한 만큼 확실하게 각인시킨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마도 작가는 이 이야기에서 다른 걸 말하고 싶었던 거 같다.

 

음악이 인간의 마음에 끼치는 영향력

부모가 아이에게 끼치는 영향력

나라가 국민에게 끼치는 영향력

테러가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

세계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의 참사가 끼치는 영향력

 

이 모든 것들을 아우를 수 있는 건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아니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 같다.

 

그래서 쇼팽 콩쿠르는 테러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고.

테러의 참사를 겪으면서도 얀은 피아노를 멈추지 않았고.

장애의 고통 속에서도 사카키바와 미사키는 자신의 길을 멈추지 않았고.

전쟁의 위기 속에서도 사람의 마음을 믿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누군가를 악을 행하고자 한다.

그러나 늘 그 악을 막으려 하는 사람이 존재한다.

 

언제까지나 쇼팽은

잔인한 이야기를 폭탄처럼 터뜨려 놓고, 그 위에 쇼팽의 피아노를 흩뿌려 놓았다.

그래서 참혹함으로부터 나 자신이 보호되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그리고 그 느낌은 이 이야기를 좀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힘을 준다.

 

여태까지 내가 경계해왔던 일본 추리소설의 잔혹함과 비정상적인 일탈이 전혀 없는 이야기였다.

잔혹함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잔잔한 위로를 함께 던져주는 이야기꾼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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