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인 가가 형사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는 졸업이다.
하나의 과정을 마무리하고 다른 과정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길.
졸업.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까지 함께 한 7명의 친구들은 각자의 진로를 계획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대학 졸업반이다.
도도와 쇼코, 와코와 하나에, 가가와 사토코, 그리고 나미카
세명이 커플을 이루고 나미카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가가가 사토코에게 고백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졸업은 끝맺음과 동시에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래서 쇼코의 시체가 발견되었을 때 친구들은 서로를 향해있던 보이지 않는 벽을 체감한다.
모든 비밀을 서로 공유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서로 보고 싶은 것만 보았고 알고 싶은 것만 알았던 것이다.
고교 3년 대학 4년의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들은 서로에 대해 잘 알았지만 그 잘 알았던 만큼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쇼코의 죽음으로 서로의 돈독함에 균열이 생기지만 그래도 그들은 일상을 이어나간다.
쇼코의 죽음은 자살처럼 보이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고, 그게 내내 걸린 가가는 추리를 하지만 밀실 살인 사건에서 단서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사토코 역시 쇼코의 일기장을 중심으로 뭔가 추리를 해보지만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고교 은사인 미나미사와 선생집에서 모여서 설월화 게임을 하며 다도 시간을 갖던 친구들 중에 나미카가 독극물에 희생된다.
나미카의 죽음으로 인해 범인은 그들 중에 있다는 게 밝혀졌다.
하지만 나미카의 죽음도 자살로밖에는 볼 수 없는 정황에서 가가는 추리의 날을 바짝 세운다.
경찰이냐 교사냐의 기로에서 사토코에게 결혼하자고 말해버림으로써 교사의 길을 선택한 가가는
쇼코와 나미카의 죽음을 자살로 보지 않고 혼자만의 추리를 계속한다.
경찰인 아버지가 가정에 소홀해서 어머니가 집을 나갔다고 생각하고 있는 가가는 자신은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교사의 길을 택한다.
그것이 옳은 길인지 아닌지는 시리즈가 거듭되면서 밝혀지겠지만 이 졸업이라는 작품에서 가가의 결심은 확고해 보인다.
추리소설의 맛은 스피드에 있고, 범인과의 머리싸움이 추리소설의 백미이지만 졸업에서는 그런 부분이 별로 나오지 않는다.
다만 잘 알았다고 생각했던 친구의 죽음을 통해 서로의 거리를 확인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