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V 빌런 고태경 - 2020 한경신춘문예 당선작
정대건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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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이 영화 같을 줄 알았는데..... 오케이는 적고 엔지만 많다. 편집해버리고 싶은 순간투성이야.

 

 

2020 한경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 당선작 GV 빌런 고태경.

GV 빌런이란

영화 상영 시 관객과의 대화를 말하는 GV(Guest Visit)와 악당(Villain)의 조합어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등장해 분위기를 흐리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조혜나는 원 찬스라는 영화로 감독 소리는 듣지만 망한 영화의 감독이자 인생의 실패자로 스스로를 낙인찍고 살아가는 서른 초반의 영화인이다.

영화를 사랑하고, 영화를 위해 살지만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인생에서 알바로 전전하며 살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GV 빌런 고태경과의 만남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혜나가 좋아하는 영화의 조감독 출신이었던 고태경은 사시사철 베레모를 쓰고 영화를 보는 중년의 남성이 되었다.

그런 그를 주인공으로 다큐멘터리를 찍기 시작하면서 혜나의 멈췄던 시간은 다시 흐른다.

 

 

 

나는 고태경과 나를 동일시하는 동시에 고태경처럼 되고 싶지는 않았다.

 

 

고태경처럼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극장을 전전하며 GV 빌런은 되고 싶지 않은 그였지만 그와 자신의 처지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언뜻 실패한 인물처럼 보이는 고태경.

언제나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고태경.

언젠간 극장에서 자신의 영화를 상영한다는 꿈을 가진 고태경

그러나 현실에선 택시 운전과 노인회관에서 영상 편집을 강의하는 쉰 살이 넘은 고태경이었다.

 

 

 

서른의 나이에서 혜나가 바라보는 미래의 오십 대 고태경은 자신과 닮았지만 그렇게는 되고 싶지 않은 그런 사람이었다.

 

완성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야. 모든 완성된 영화는 기적이야.

 

 

완성작 한 편 가지고 있지 않은 고태경의 말은 망했더라도 완성작을 가진 혜나에게는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무언가 완성작 하나를 가지고 있는 인생.

그건 여태 생각해보지 못한 자기 자신이었다.

 

 

이야기 곳곳에서 나를 돌아 보는 시간을 가졌다.

내 인생도 엔지와 편집해버리고 싶은 순간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렸다.

이 구차스러운 인생들의 이야기가 과연 아름다운 영화처럼 해피엔딩이 될까?

내가 궁금한 건 그것이었다.

 

 

 

해피엔딩 보다 더한 해피엔딩

 

자기가 좋아한 것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너무 많았다. 우리가 추구하던 꿈과 기대하던 삶이 전부 무너진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 같은 거는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다.

선배들도 선생들도 부모님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승호처럼 현실을 살며 꿈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윤미처럼 자신의 꿈을 깎아내리고, 미워하고, 비판하면서 헐뜯는 삶을 살 수도 있고

혜나처럼 맨땅에 헤딩하면서 계속 부딪히고 나아가는 삶도 있고

태경처럼 계속 꿈을 꾸며 언젠가는! 이라는 환상을 유지하는 삶을 살 수도 있다.

 

 

이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지점에서 혜나의 몇 꼭지 성장한 모습을 뿌듯하게 지켜보게 된다.

계속 꿈을 꾸고 희망을 가진 태경에게서 행복을 본다.

 

 

 

난 나름대로 나쁘지 않게 살고 있었다고. 그런데 자네가 내 인생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나서부터 몹시 불편해졌어. 자네가 나를 패배자라는 렌즈로 보니까.

 

 

 

나 역시 혜나의 시선으로만 고태경을 보았다.

어쩜 우리 모두 패배자라는 렌즈로 주변을 보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행복이라는 렌즈로 보는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내게 GV 빌런 고태경은 패배자의 렌즈로 바라보던 시선을 행복의 렌즈로 갈아끼워주는 역할을 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흔들림 없이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행복한 인생을 꾸리는 바탕이 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주었다.

뭔가 답답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이 이야기가 불편하지 않게 읽힌 이유는 방황했던 모두가 자신의 자리를 덤덤하게 지키고, 서로를 이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법을 서로에게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실패가 나의 일부라는 것을 명확하게 안다. 인생이 '원 찬스'가 아니고 내가 다 날려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나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할 뿐이다. 기회를 만들기 위해 시나리오와 연출 노트를 열심히 쓰면서. 기회가 왔을 때, '나는 준비가 아직 안 된 것 같아' 라고 말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동안 실패를 인정해 주지 않는 사회에서 살았다.

이제부터는 그 실패를 인정해 주고 위로해 줄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실패 없는 성공은 없는데도 우리는 성공만을 이야기했다.

이 소설은 실패가 나의 일부라는 것을 인지하게 해주었다.

그래서 읽고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세상을 보는 관점을 조금 달라지게 만들어 주는 소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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