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아내
A.S.A. 해리슨 지음, 박현주 옮김 / 엘릭시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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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그도 알고 그녀도 알며, 그녀가 안다는 사실을 그도 안다. 요는 가식. 중요하기 그지없는 가식을 유지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사실이 공공연히 선언되지 않는 한.

 

 

 

길버트 부인.

그녀의 공식 이름이다.

그녀와 토드는 이십여 년간 부부관계를 유지한다.

토드는 끊임없이 바람을 피우지만 언제나 돌아왔다.

그녀는 그런 그를 두고 본다. 그를 위해 집을 가꾸고, 요리를 한다.

언제나 토드의 자리는 자신의 옆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나타샤는 스물한 살의 여대생이자 토드의 절친 딘의 딸이다.

바람을 피우고 피다가 결국은 친구 딸과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었다.

게다가 그 아이는 임신까지 했고, 결혼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 모든 건 그냥 지나갈 거야.

그전과 동일하게.

 

심리 상담을 하며 자신의 영역을 일궈 나가는 조디.

건축일에 종사하는 토드.

남부럽지 않은 이들의 겉모습은 서로의 영역을 지켜주는 울타리 구실을 할 뿐이다.

아이 없이 사는 두 사람만의 관계는 토드가 아이를 갈망하면서 틈이 생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믿었던 토드의 바람끼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럼에도 다시 돌아올 거라 믿었던 조디에게 토드는 자신의 집에서 나가달라는 강제 퇴거 집행을 한다.

 

이런 적은 여러 번 있고, 지금도 그중 하나다. 토드와 결혼하지 않은 게 어쩌면 실수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때. 때로는 어째서 결혼에 그처럼 극렬히 반대했는지 기억해내기도 힘들다.

 

 

 

조디와 토드는 사실혼 관계였다.

법적으로 조디는 토드에게 아무런 권한이 없었다.

20여 년간 같이 일군 이 모든 것들에 그녀의 몫은 없다.

그녀는 토드가 선심 쓰듯이 다 가지라고 말한 가구들 외엔 소유할 게 없었다.

 

그녀의 친구 엘리슨이 그녀에게 해결책을 내놓는다.

그의 유언장엔 아직 조디의 이름이 있을 테니 토드가 결혼하기 전에 그를 없애버리자고.

그러면 그녀는 이 집에서 쫓겨나지 않아도 된다.

그의 모든 것이 그녀의 것이 되니까.

 

비슷한 유형의 이야기들이 많지만 이 조용한 아내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토드는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와 그 곁에서 온갖 것을 견뎌낸 어머니의 틈에서 자랐다.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한 그는 자수성가해서 지금의 부를 일궜지만 안정적인 가정 앞에서도 좀체 마음을 다잡지 못했다.

조디는 그런 토드를 이해하고 분석하면서 그저 이 상황을 유지해가기만을 바랐다.

평범한 가정에서 좋은 부모 아래서 좋은 교육을 받았던 조디에게도 어두운 과거가 존재했다.

그녀 스스로 지워버렸던 과거의 기억.

어쩜 그것들로 인해 토드와 조디는 완벽한 가정을 꾸미고도 불완전하게 살아왔는지 모른다.

사실혼 관계는 토드에게 불안정한 닻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자꾸 흔들렸는지도 모르지.

 

아들러 심리학에 근거한 심리 상담사 조디는 결국 토드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알리바이도 만든다.

조디의 계획은 완벽하게 성공할까?

 

그 남자.

그 여자.

토드와 조디의 시각이 번갈아 가며 이야기를 이끈다.

그래서 두 사람의 심리와 감정과 변화를 각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다.

토드가 빤하게 보인다면 조디는 결코 다 보이지 않는다.

그게 이 이야기의 매력이다.

 

잘 알 수 없는 주인공과 빤히 보이는 주인공 두 사람의 이야기를 번갈아 읽어가며 내 삶도 돌아보게 된다.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감정적 변화들.

유지하려는 자와 벗어나려는 자의 끝없는 줄다리기.

토드는 집을 나와서야 자신이 무엇을 버렸는지 깨닫는다.

조디는 토드가 집을 나가고 나서도 다시 돌아올 거라 믿는다.

그래서 조금 답답했다.

이 여자 이렇게 상황 파악이 안 되나?라는 생각 때문에 답답했는데 어쩜 그건 조디가 토드를 너무 잘 알아서 일 것이다.

그 남자는 결국 언제든 싫증을 내고 내게 돌아올 거라는 믿음.

그건 조디만이 토드에게 줄 수 있는 안정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위해 그녀가 늘 긴장하고 살았다는 걸 아는 사람은 드물 테지만.

 

결국 모든 일은 예상대로 되지 않았다.

신은 언제나 불공평한 듯이 공평한 법이니까.

헌신한 자에게는 그에 합당한 대가가 주어지는 법이다.

불성실한 자에게도 그에 따르는 대가가 주어지듯이.

 

완벽한 이야기였다.

작가의 첫 소설이자 유작이라는 게 아쉽다.

다음 소설은 더 멋진 이야기였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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