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를 처음 읽었을 때가 생각난다.
중학교 겨울방학 때였다. 책장 맨 위에 6권인가 8권인가 세트로 꽂혀있던 삼국지가 있었다.
호기심에 들춰보다가 앞장에 담겨 있던 그림들에서 관우와 장비의 그림을 보고 호기심이 일었다.
삼국지의 주요 인물들의 그림이 담겨 있었는데 나는 유독 관우와 장비의 그림에 혹 했던 거 같다.
세로쓰기 두 문단으로 된 아주 오래된 책이었다.
읽기도 생소한 세로 읽기를 왜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한자도 무수히 많았지만 다 괄호 안에 쓰여 있어서 뜻도 모르면서 한글만 읽어갔다.
그렇게 내게 삼국지는 조조는 나쁜 놈!
유비, 관우, 장비는 좋은 사람들~이라는 공식으로 연거푸 읽히는 시리즈가 되었다.
이후에 나관중의 삼국지를 박종화 님이 번역한 책을 소장하고 계속 읽었다.
해리 포터가 나오기 전까지는 심란하거나 생각이 복잡할 때 숨어드는 책이 바로 삼국지였다.
그렇게 삼국지를 읽으며 나도 자랐고 어른이 되어서 읽을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인물은 유비도 관우도 장비도 제갈량도 아닌 조조였다.
간웅 조조.
삼국지연의에서 조조는 희대의 간웅이자 경망스럽고 잔인한 인물로 나오지만 나는 점점 조조가 유비보다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유비가 그 많은 인재들의 도움을 받고도 우유부단함에 자기 발목을 잡을 때
조조야말로 스스로 인재를 발굴하고 적재적소에 써먹으며 병법도 쓸 줄 알고, 휘하의 내로라하는 장수들도 다스릴 줄 알았다.
그런 점이 어른이 되면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번에 읽은 정사 삼국지는 어느 편에 치우치지 않고 이야기하는 매력이 있다.
정사여서 그런지 각각의 인물에 대한 평이 골고루 이루어진 느낌이 든다.
그리고 삼국에 대해서도 공정하게 다루고 있다.
우리가 아는 삼국지연의의 소설적 내용을 거둬낸 담백한 삼국지의 이미지랄까?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가 정사에는 언급되지 않았다고 하니 이것은 소설적 장치였을까? 아님 정사에 기록 가치가 없어서 빼버린 것일까?
정사에 기록된 유비는 어쩜 그리도 겁이 많고, 똑똑한 처신을 한 번도 안 보여 줄까?
그가 위대한 인물임을 알려주는 말은 수많은 백성들이 그를 따랐다는 말인데, 어쩜 자신의 안위보다는 백성들을 먼저 걱정하고 그들 편에서 결정을 하는 일들이 권력을 앞에 둔 무리들에게는 우유부단하고, 답답해 보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때도 지금도 백성이나 국민을 위하는 일은 정치나 권력 앞에서 무능으로 치부되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싶다.
정사라 해서 좀 딱딱하고 읽기 어려울 거라 지레짐작했는데 이 책은 마치 삼국지에 대한 강의를 책으로 읽는 기분이었다.
삽입된 귀여운 그림체가 글을 좀 더 읽기 편하게 만들어 주었다.
한눈에 현재 설명하고 있는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그림으로 보여주고 새로운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주석을 따로 달아서 긴 설명 없이 이야기를 이어간다.
2권에 담기에는 짧은 분량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의 기록을 다른 것이기에 삼국지연의보다는 내용이 짧을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다.
다만 삼국지의 백미 적벽대전과 제갈량의 활약에 대한 묘사가 거의 없어서 아쉬웠다.
우리가 그렇게 대단하게 알았던 제갈량 역시도 역사의 한 페이지에서는 몇 글자로 묘사되는 인물일 뿐이었다.
쎄에이스는 유투브에서 역사를 고증하고 알아가는 채널을 운영 중이다.
그래서인지 글이 막힘없이 흐르고,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삼국지의 '사실'들만 나열했기에 마치 시험 전에 보는 서머리를 보는 느낌이다.
소설적 재미는 없었지만
많은 인물들과 사건들을 집약해서 보여준 정사 삼국지는 삼국지의 방대한 내용에 시작할 엄두를 못내는 사람들에게 삼국지를 쉽게 대할 수 있게 하는 그런 책이다.
그리고 주관적인 접근 보다 객관적인 접근으로 현존했던 인물들에 대한 기존의 선입견을 다듬을 수 있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관우의 청룡언월도도 적토마도 정사에선 언급되지 않았다 하니 어쩜 이것 역시 소설적 장치가 아닌가 한다.
그저 욕심만 많아 보였던 역적 동탁! 이 사람이 그렇게 출중한 무예와 지략을 가진 인물이었다니 첨 듣는 얘기다.
게다가 주변인들을 잘 대해서 인기도 많았다니 세상 첨 듣는 얘기다!
정사 삼국지를 읽고 나면 그동안 알았던 인물들에 대한 색다른 식견을 얻게 될 것이다.
삼국지를 처음 읽는 사람들에게는 쉽고 편견 없이 삼국지를 섭렵할 기회이고,
삼국지연의만 읽었던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시각으로 삼국지에 출연(?) 했던 인물들을 평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