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들 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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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봐도 성인 여성의 몸은 거대한 함정 덫이었어요. 구멍이 있으면 뭔가가 반드시 처넣어지고 또 다른 게 반드시 나오게 되어있고, 하긴 원래 종류를 막론하고 구멍이 다 그렇긴 하죠.

 

 

시녀 이야기 그 후 34년.

우리는 증언으로 길리어드를 다시 만났다.

책을 읽어 가는 내내 끔찍한 느낌이 감돈다.

시녀 이야기가 여성 억압에 대한 이야기로 읽혀지는 사이사이 감춰지듯 눈에 띄지 않는 이야기가 있었다.

 

환경파괴와 전쟁과 원자력 유출로 정부가 전복되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 미국.

길리어드라는 이름으로 갈아치워지기까지 미미한 저항만 있었을 뿐 모두가 그저 되어가는 대로 지켜보고만 있었다.

길리어드의 탄생은 그 무관심에 있었다.

 

시녀 이야기의 화자였던 오브프레드 역시 곧 진정될 거라는 생각으로 별다른 이의 없이 생활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겼다.

그럼에도 아무도 잃어버린 권리에 대항하지 못했다. 오브프레드의 남편인 루크조차도 나서지 말고, 기다려 보자고 했으니까.

그 기다림의 끝에 길리어드가 세워졌다.

모두가 깨달았을 때 그 모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더 이상.

 

그 끔찍한 사실이 책을 읽는 내내 등짝에 들러붙어 있었다.

그렇게 금욕주의와 전체주의로 무장한 길리어드를 만든 사령관들은 자신들이 만든 나라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만 빼고 모든 사람들의 자유를 빼앗았다.

그리고 그들 뒤에 그녀들이 있었다.

 

내가 그런 이중적 행위를 할 수 있는 인간인가? 그렇게 철저히 배반할 수 있는 위인인가? 쟁여 둔 무연 화약을 끌고 길리어드의 토대 밑으로 이만큼 터널을 파 들어왔는데, 여기서 비슬거릴 것인가? 나는 인간이므로, 그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가장 깊은 적진에서 누구보다 가장 열성적인 지지자가 되어 여자들을 다스리고, 계몽하면서 굳건한 입지를 다진 사람.

그리고 뒤에서 모두의 비밀을 차곡차곡 쟁여 놓은 사람.

그리고 마지막 한 방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

 

마치 첩보 영화 한 편을 본 느낌이다.

매 페이지마다 조마조마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3명의 화자의 증언.

과거의 이야기가 하나로 엮이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가공할 세계를 창조해낸 마거릿 애트우드.

이 이야기를 페미니즘 관점에서만 보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그것보다 더 무서운 건 인간 본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무관심, 나만 아니면 된다는 이기.

그것이 결국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아무런 저항조차도 하지 못할 순간이 되면 사람은 선택을 하게 된다.

누구는 아는 얼굴을 마주 보며 총을 쏘고,

누구는 검은 옷들을 향해 총을 쏘고,

누구는 가리개를 하고 죽음을 택한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를 꿰어 차고 나아가기도 한다.

 

기이함과 불평등함을 신의 이름으로 포장한 길리어드.

소수의 권력자만이 모든 걸 누리는 길리어드.

그들을 탄생 시킨 건 다수의 침묵이었다.

그 침묵의 대가가 너무도 빠르게 자신을 옥죄어 올 거라는 생각도 못 했겠지.

 

상상 속 길리어드는 지금 존재하고 있는 우리일지도 모른다.

편을 가르고

급을 가르고

모든 걸 가진 자가 더 많이 가지려 하고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 하루하루는 버거운 일상일 뿐이다.

 

순결을 강조하는 자들이 더 변태스럽고, 공정함을 논하는 자들이 불공정하다.

선의를 말하는 자들이 악마스럽고, 정의를 말하는 자들이 오히려 정의롭지 못하다.

책을 읽고 난 마음이 개운하지 않다.

 

길리어드가 상상 속에 머물지 않고 현실에 세워진 느낌이다.

소수의 편의를 위해 개조되고, 계몽되고, 길들여진 내 모습이 그녀들 보다 나을 것이 없어 보여서.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신 분들에게 권한다.

이 세계를 알고 나면 세. 상. 을 보는 시선이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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