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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왕
니클라스 나트 오크 다그 지음, 송섬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9년 12월
평점 :
저는 위로의 말은 싫습니다. 제 친구가 되지 말아주십시오. 예안 미샤엘. 시간이 얼마 없고, 어차피 남는 건 슬픔뿐일겁니다.
폐결핵으로 죽어가는 세실 빙에는 친구인 치안총감 놀린의 부탁으로 사건 하나를 맡는다.
놀린의 임기 전까지의 시간 동안에만 해결해야 하는 사건은 강에서 끌어올린 팔다리가 잘리고 이와 혀가 잘려나가고 눈알까지 뽑힌 시체의 죽음을 파헤치는 것이다.
그 시체를 강에서 끌어올린 사람은 전쟁에서 팔 하나를 잃고 방범대원이라는 이름만 가지고 사는 카르델이다.
빙에는 카르델과 함께 단서가 전무한 사건을 수사하기로 한다.
곧 죽음이 임박한 빙에와 외팔이 카르델은 성격도, 살아온 세월도 판이하게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강에서 걸어 올린 시체의 살인자를 잡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첫 소설의 내공이 이 정도라면 다음번에 나올 이야기는 과연 어떨까?
이 이야기는 정말이지 스릴러와 공포물에 어지간히 익숙한 사람일지라도 눈을 돌릴만한 장면 묘사가 있다.
잔혹 스릴러 같은 느낌이 양들의 침묵을 능가하는 거 같다.
피와 굶주림과 똥 냄새가 페이지 곳곳에 스며있다.
하지만 제가 사형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법은 사형수를 조금도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오늘의 범죄자를 이해하고자 노력하지 않는다면 내일의 범죄를 무슨 수로 막겠습니까?
이상주의자 빙에는 보통 사람들 보다 몇 수의 앞을 내다보고 치밀하게 사건을 수사한다.
자신이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걸 아는 그에게 마지막 움직일 힘을 주는 건 바로 이 잔혹한 살인마를 잡는 일이다.
항상 술에 절어 있는 카르델은 생각 대신 몸으로 사건의 냄새를 맡는다.
서로 다른 이 두 사람은 그래서인지 서로에게 의지하게 된다.
쥐꼬리만한 단서로 사건의 가닥을 잡아가는 사이사이 연관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덧붙여지며 이야기는 공포스럽다가, 잔혹스러웠다가, 진저리 치게 억울하다가, 타락의 끝을 보게 된다.
실존 인물들의 이름이 거론되고, 생생한 묘사의 힘으로 이 이야기는 정말 그 시대에 실제로 일어난 일 같다.
여기에는 색다른 아이들만 모아놓은 동물원이 있어. 그중 추한 몇몇은 다른 아이들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려고 골랐지만, 우리 손님들이 그들의 열등함, 치욕, 고통과 불행을 보고 즐거워하도록 갖추어놓은 아이들도 있어. 곱추, 난쟁이, 언청이에서부터 수두증에 걸려 머리가 커다랗게 부푼 아이는 물론 기형에 불구자까지 있지.
인간의 잔인함의 끝을 보여주는 이곳은 귀족들의 은밀한 놀이터다.
권력과 돈을 가진 자들의 추악함이 극에 달하는 곳.
카르델이 발견한 시체가 잠시 머문 곳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누이야, 나는 또다시 울음을 떠뜨렸단다. 한 인간을 도륙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용기가 아니라 무슨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비겁함이라는 걸 깨달았거든.
살아있는 사람의 사지와 혀와 이와 눈을 도륙내는 자는 어떤 자일까?
이 이야기에서 가장 끔찍한 것은 바로 이점에 있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누군가의 명령에 의해서,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누군가를 도륙내야 하는 사실.
정신이 빈약한 자는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자신의 복수조차도 남의 손을 빌려야 하지.
그러면서도 마치 스스로는 대단한 자아를 가진 것처럼 행세하지.
이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지금 세상에 살고 있는 것에 감사했다.
내가 세상은 점점 발전하고 살기 좋아지고 있는 것이 맞다는 생각을 하게 될 줄이야!
타임머신이 생겨서 시간 여행을 한다 해도 저 시대로는 가고 싶지 않다.
살아보지도 않은 세상을 이토록 잘 묘사한 작가의 필력에 놀랄 뿐이다.
사랑은 정말이지 한 인간을 다시 태어나게도 하지만
한 인간을 철저하게 망가뜨리기도 한다는 진실을 알았을 뿐이다.
벨만 누아르 3부작의 첫 번째라고 하니 뒤를 이어 나올 차기작들이 어서 나와주기를 갈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