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 대목에서 소름이 끼친다.
모두의 스펙이 같은 처지에서 누구도 엡실론의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지금 우리 사회도 알파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그들이 몸담을 수 있는 곳은 한계가 있다.
그리고 알파들은 힘들거나 몸을 쓰거나 하는 일은 하려 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난자와 정자를 수정 시켜 배양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지능 수준을 정하고 사회 각 분야에서 쓰임새 있도록 조정하여 태어나게 하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야만인 존.
인간들이 인간적으로 살고 있는 곳에서 온 이 야만인의 고뇌는 이 멋진 신세계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그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왔노라 소리쳤으니까.
마음이 복잡해진다.
이 책에 나와있는 기술들이 이미 이루어진 세상에 내가 살고 있음으로.
앞으로의 미래가 이렇게 갈지 아닐지는 알 수 없으나
인간은 좀 더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을 미덕을 삼고 기술과 과학을 발전시켜왔다.
세상이 점점 편리해지고 자동화되면 될수록 인간은 외로워지고, 더욱 바빠진다.
마음의 여유 같은 건 누릴 새도 없이 쳇바퀴 돌듯이 하루를 돌고 나면 소진되어 버리니까.
우리가 상상하는 멋진 신세계는 어떤 것일까?
소수의 인간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다수의 인간은 소마에 길들여져 만족이라는 함정에 빠져 사는 곳.
자유의지를 잃은 인간들에게 자유는 깨달을 수 없는 감정이다.
그래서 상징적인 야만인 존의 등장은 이 신세계의 모순을 잘 보여준다.
그것조차도 실험에 의해 차단되고, 설계되고, 가꾸어진 것이었지만.
결국.
인간의 선택은 영원한 안식뿐일까?
미래의 씁쓸함을 미리 맛본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