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에 이르는 병
구시키 리우 지음, 현정수 옮김 / 에이치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것은 벌이다. 정말로 지켜야 할 사람을 지키지 못하고 배신한 벌이다. 상처는 평생 치유되지 않고 질퍽질퍽하게 곪는다. 소리 없이 괴사해간다.




있는 듯 없는 듯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가는 대학생 마사야.

한때 신동 소리를 듣던 동네의 자랑거리였지만 지금은 삼류대학 법학부에 다니고 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편지 한 통이 온다.

감옥에 갇힌 연쇄살인범에게서.


하이무라 야마토.

그는 마사야의 동네 빵집 사장이었다.

언제나 친근한 미소로 빵 한 개씩을 덤으로 주고 자신에게 격려를 해주던 그 상냥한 빵집 주인이

자신의 집에 10대 아이들을 데려와 고문하다 죽이고 마당에 묻어 버리는 연쇄 살인마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24건의 살인 기소에 9건의 살인으로 입건된 그가 1건은 자신의 죄가 아니라며 마사야에게 진짜 살인범을 잡아 달라고 한다.


연쇄살인귀, 엽기살인범, 아동살해자, 질서형 살인범, 연기성 인격장애자, 귀축, 정신이상자, 괴물.

자기 자신도 다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소년소녀를 감금하고, 고문한 끝에 죽여서 마당에 묻고는 자신의 컬렉션으로 삼아온 남자.



거절할 수 없는 이유로 마사야는 그의 흔적을 쫓는다.

그의 어린 시절부터 최근까지의 흔적을 쫓는 마사야는 사람들이 모두 하이무라를 끔찍한 살인마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마주친다.

모두들 그가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왤까?


이 이야기는 마사야의 이야기 사이에 보이지 않는 여자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공들여 작업한 결과물들이 하나씩 드러나게 된다.


악의를 가진 자가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고 수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세뇌시켜 왔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


읽고 나서도 그 악의가 자꾸 되새겨져서 더 질리게 만드는 이야기다.

하이무라는 연쇄 살인마이기도 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조종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들여 사람들 마음속에 하이무라라는 사람에 대한 사랑과, 이해와, 굳건한 믿음을 각인시켰다.

그래서 모두가 그가 저지른 끔찍한 범죄를 대하고도 그를 두둔하고, 그를 이해하고, 그가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다. 라고 믿고 있다.


마치 최근에 알게 된 화성연쇄살인범처럼 하이무라도 그렇게 작은 동네에 숨어 자신의 범죄를 감추며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착하고 성실한 가면을 쓰고 살았다.

마사야 역시 그에게 받은 온정을 잊지 못해 그의 주장을 그대로 믿고 그 한 건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그의 조종대로 움직인다.

그러면서 점점 자신과 하이무라 사이의 연결의 끈을 찾게 된다.


참 무서운 이야기다.

사람의 정신에 심어진 이 바이러스는 자신의 의지대로 조정할 수 없음이.

스스로 조정당하고 있다는 의식도 못한 채로 꼭두각시처럼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잔인한 살인보다 더 잔인하게 느껴진다.


하이무라의 마수에 걸려든 사람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걸까?

마사야의 눈을 통해 하이무라의 삶을 되짚어가면서 그가 받은 어린 시절의 학대와 방치가 드러난다.

머리가 좋았던 아이가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방치되었을 때 그 아이의 지능은 자신이 받은 만큼 보다 더 많은 걸 되풀이하는데 쓰이게 된다.

그렇게 사람을 조종하고, 이용하고, 자신에게 복종하게 만들었던 하이무라가 비단 이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인물일까?


겉으로 드러나는 가면엔 호의와 온정과 믿음을 담아 놓고

안으로 숨겨진 얼굴엔 증오와 살인의 본능을 담아 놓고 이중적 생활을 해온 하이무라는 어디에도 있는 사람일 수 있다.

연약한 사람의 심성을 파고들어 악의를 심어두고 그것이 꽃 피기를 기다리는 저의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걸까?


이상한 사람이었어요. 그 사람과 있으면요. 어쩐지 저에게 자신감이 넘쳐흘러요.




그 이유 때문에 마사야는 하이무라의 누명을 벗기려 노력한다.

강의도 빼먹고, 자신의 삶도 밀어둔 채로 하이무라의 누명을 벗기려 노력할수록 예전의 자신을 되찾아가는 느낌을 가진다.

이것은 어떤 자신감일까?


자신의 사후에도 이어질 지배력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하이무라에게 인생 최고의 오락인 것이다.



마사야에게 드리운 하이무라의 지배력이 사라졌다고 믿는 순간.

또 다른 마수가 덧씌워지는 걸 보게 된다.

그래서 더 끔찍한 기분을 갖게 되는 이야기다.

끝났는데 뭔가 계속되는 기분이 남아서.

 

뭔가 조용히 진행되는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시끄럽게 울린다.

이 점잖고 무턱대로 믿고 싶게 만드는 희대의 살인마가 세뇌시켜 놓은 인간들이 세상에 얼마나 남아있을까를 생각하면 심장이 조여오는 거 같다.

마사야가 잠깐 살인의 충동을 느끼는 장면에서 정말 작가의 의도대로 살인은 병이고 그것은 바이러스처럼 전염성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하는 건 무엇일까?

 

이야기를 끝내고 나서도 찜찜한 이유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그나마 일본에 사형제도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 이야기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