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와 꿀벌과 나
메러디스 메이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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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미국 중서부 3만 피트 상공 어디엔가 부모의 역할을 버리고 온 것 같았다.

 

회고록이자 에세이를 읽었는데 소설 한 권을 끝낸 느낌이다.

읽으면서도 계속 생각하게 된다. '이거 실화 맞지?'

메러디스는 남동생과 엄마와 함께 외할머니네 집으로 온다.

잠시 엄마와 아빠가 화해할 동안만 머물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엄마와 아빠는 헤어지는 쪽을 택한다.

방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엄마와 그런 엄마를 괴롭히지 말라는 할머니.

어린 메레디스를 마음 붙이게 한 건 할아버지와 그의 꿀벌이었다.

 

곤충의 생에서도 좌절은 자연의 섭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꿀벌은 어떤 삶을 살 것이지 결정하는 선택권이 남이 아닌 스스로에게 있다는 사실을 내게 확인시켜주었다.

나는 부모를 잃었다는 슬픔에 깔려 무너지는 앞날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앞날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어린 메레디스에게 소일거리를 주고, 벌들의 세상을 통해 삶의 지혜를 전수해 준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는 엄마의 친아버지가 아니었다.

할머니와의 재혼으로 메러디스의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그는 묵묵히 아이의 아픔과 슬픔을 지켜보며 그 아이가 삶을 지탱해 나아갈 수 있도록 옆을 지켜주었다.

 

자꾸 눈시울을 적시게 되어서 책을 읽는데 속도가 나지 않았다.

엄마는 아이들을 내버려둔채로 자신의 슬픔에 빠져 살았고

할머니는 그런 엄마를 달래가며 아이들을 돌보기는 했지만 거리를 두었다.

한창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아야 했던 아이들은 무관심속에 남겨졌고

아빠는 새로운 삶을 찾아 내어 나름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떻게 엄마라는 사람이 저 정도로 무기력할 수 있을까?

어떻게 아이들을 저렇게 방치 할 수 있을까?

읽는 내내 답답했지만 엄마에게도 말하지 못한 슬픔이 있었다.

그것 때문에 자신의 가정, 삶도 망쳤다.

어쩜 메레디스도 엄마와 같은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할아버지와 꿀벌이 없었다면.

 

 

 

 

 

아빠의 자리를 대신 채워준 할아버지는 메러디스에게 또 하나의 세상이었다.

그에게도 메러디스는 자신의 결핍을 채워주는 선물같은 존재였다.

 

"그러니까... 할아버지는 아이를 키울 일이 없을 줄 알았어. 그랬는데 무슨 행운인지 너희 둘이 나타났단다."

그 순간 기쁨이 폭발하며 온몸이 짜릿해졌다. 내게도 벌집이 있었던 것이다. 내 벌집은 바로 이곳, 할아버지의 꿀 버스 안이었다.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었던 할아버지와 나.

메러디스와 매슈의 곁에 할아버지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혈연 관계가 아니더라도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 진정한 가족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 이야기였다.

 

그리고 꿀벌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는 책이다.

꿀벌이 그렇게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집단이라는 걸 알아가면서 정말 인간의 문명이라는 것이 과연 그렇게 뽐낼만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스스로의 터전을 바르지 못한 것들로 채우고 살아가는 인간계는 꿀벌에게 도움을 받을 자격이 없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렇게 꿀벌들이 급격히 사라져가는 건지도 모르지...

 

꿀벌이 살아가는 모습에 녹아 있는 숭고하고 경탄스러운 삶의 방식은 곧 할아버지가 생각하는 인간이 마땅히 지키며 살아가야 할 기준과도 같았다.

할아버지는 인간이 한평생을 사는 동안 뭐든 적당히 주고받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걸 이해하고 있었다. 꿀벌과 인간 사이든 중학교 친구 사이든 엄마와 딸 사이든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서로의 존재가 소중하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해야만했다.

 

 

메러디스의 엄마에게도 자신의 의붓 아버지와 함께 할 수 있었던 시간이 많았다면

어쩌면 다른 인생을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어른들의 문제로 인해 방치된 아이들에게 길잡이를 해 줄 수 있는 어른이 있다면

아이들은 그 와중에도 메러디스 처럼 자신의 길을 잘 밟아 가지 않을까?

그런 어른이 내 주위에도 있었을까?

나는 그런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책을 읽고 나서도 많은 생각이 넘나든다.

 

 

참 좋은 책이다.

 

 

올해 참 많은 책을 읽었고, 두고두고 읽을 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책도 있었지만

이 책만큼 계속해서 깨닫게 하고, 느끼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 책은 처음이다.

 

구구절절한 내 마음을 글로 쓰는 건 이 책에 실례를 범하는 거 같다.

그만큼 간결하고도 담담하게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작가의 글에 사족이 붙는 거 같아서.

 

저널리스트로서의 삶을 살아온 저자는 할아버지를 떠나 보내고 양봉가로서 제2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것이다.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주위의 아이들에게 할아버지 같은 어른이 되어 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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