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은 예부터 집을 지키는 수호신 같은 존재였다.
가늠할 수없이 커다란 뱀은 영적인 존재였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롱롱이란 이름의 뱀은 그래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전설이었다.
D시에 사는 사람들에겐.
허물로 뒤덮인 사람들이 있다.
어디서 언제 발병했는지 모르지만 어느새 사람들의 피부는 파충류처럼, 뱀처럼 허물이 일었다.
그것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T-프로틴을 먹어야 하지만 정부의 지원이 끊긴 뒤로는 밥 한 끼 가격의 약 값을 댈 수 없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롱롱의 전설은 허물을 벗는 사람들에게는 희망이었다.
롱롱이 허물을 벗으면 허물로 뒤덮인 사람들의 허물도 벗어지는 것이었다.
더 이상 가려워서 긁지 않아도 되고, 피부를 가리느라 긴 옷을 입지 않아도 되고, 더 이상 약을 먹지 않아도
되고,
보통의 사람으로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쪽 사회는.
제약회사는.
정부는.
그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어떻게 이렇게 신비롭고 신박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지?
공포란 인간의 욕망과
여러모로 비슷하지. 공포가 공포를 낳는 것처럼 욕망이 욕망을 낳는다네. 내가 공포를 이용했다면 자네는 욕망을 이용한 거야. 허물을 벗고자 하는
욕망. 그게 죄라면, 자네와 내가 저지른 죄의 무게는 비슷할 걸세.
이 가상의 세계에도 현실은 반영된다.
사람들이 사람들 위에 군림하기 위해 필요한 건 공포를 심는 것.
현실은 언제나 소설이나 영화보다 잔인한 법이니까.
파충류 사육사였던 나는 다시 직업을 얻기 위해 동물원에서 도망친 뱀을 찾아다닌다.
그녀가 찾아낸 뱀은 롱롱이 맞을까?
그 뱀이 롱롱이라면 사람들의 소원은 이루어지는 걸까?
그녀도 허물을 완전히 벗을 수 있을까?
지긋지긋한 방역센터에 가지 않고도?
제약 회사는 롱롱 때문에
내가 끝장났다고 여기는지 몰라도 그건 틀렸어. 그들은 과학을 몰라. 과학자를 절대모르지. 자본의 논리만 좇는 자들이 뭘 알겠나?
과학자는 가설을 세우는
존재라네.
독특한 소재의 이야기가 주는 맛이 담백하지 만은 않다.
세상과 맞물린 이야기 중에 담백한 건 없으니까.
이 독특한 이야기는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게 한다.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뱀이 계속 등장해서 꿈자리가 뒤숭숭했지만 그럼에도 신박한 소재의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
색다른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