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친 저스틴이 새로운 여자를 데리고 왔다.
그와 나는 몇 번의 헤어짐이 있었지만 언제나 그는 다시 돌아왔었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이 관계를 참을 수 없다.
티파니는 전 남친 저스틴과 살던 아파트를 한시라도 빨리 나오기 위해 급히 집을 구해야 했다.
그때 이 셰어 하우스의 광고를 보았다.
밤 근무를 하는 사람이 자신이 근무하는 시간 동안 자신의 아파트를 사용할 룸메이트를 구하고 있었다.
오후 6시 이후부터 다음날 아침, 그리고 주말 동안은 티피가 아파트를 독차지한다.
호스피스 병동 간호사인 리언은 밤 근무를 한다.
티피가 회사에 출근해 있는 동안은 리언이 아파트를 차지한다.
서로의 얼굴을 모른 채로 하나의 공간을 같이 공유하는 그들.
하나의 침대를 공유하면서 왼쪽과 오른쪽을 나눠 사용하는 티피와 리언.
출판사 편집자인 티피는 매사 자신감이 부족하고 저스틴 때문에 괴로운 나날을 보낸다.
간호사인 리언은 여친 케이와의 사이가 조금씩 껄끄러워지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그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동생 리치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있는 상태였다.
내성적이고 자신을 드러내기 싫어하는 리언은 이 모든 문제를 끌어안고 시간과 공간을 쪼개어 가며 리치를 구할 방도를 찾고
있었다.
얼굴도 모르지만 같은 장소를 공유하는 티피와 리언은 쪽지로 소통을 한다.
그들의 쪽지가 쌓여가는 만큼 그들은 서로의 상황을 조금씩 알게 된다.
이 과정이 이 이야기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다.
편지도 아닌 쪽지가 어떻게 사랑의 메신저로 변해가는지의 과정이 참 달달하다.
그래서 단순히 로맨스 소설로 착각할 뻔했다.
티피는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소심하고, 정신머리 없고, 뚱뚱하고, 자신감 없는 그런 여자가 아니었다.
저스틴의 계략으로 그녀는 자신이 그런 형편없는 여자라는 굴레에 빠져 스스로를 부당하게 취급하고 있었다.
저스틴은 그녀 주변인들을 차단하고, 그녀와 친구들의 사이를 조금씩 벌려놨다.
당하고 있다는 자각을 하지 못한 채로 티피는 저스틴의 손바닥 안에서 날지 못하는 새가 되었다.
영국 런던 배경의 이 달달하고
마냥 예쁘게 전개되는 이야기 사이사이에 공포의 그늘이 진다.
저스틴은 계획적으로 그동안 티피를 자신의 소유물로 전락시켰다.
그녀를 밑바닥까지 추락시키고는 다시 그녀의 손을 잡아 올려 그녀가 자신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라고 인식하게
만들었다.
저스틴과 헤어지고 리언의 아파트에서 고요한 삶을 시작한 티피는 불쑥불쑥 나타나는 끔찍한 기억들을 통해
저스틴이 자신에게 가한 정신적 폭력의 잔재를 알게 된다.
앞으로도 해결 방법에만
집중해. 시도 때도 없이 쳐들어오는 기억이 힘겨울 거야.
하지만 이 일은 중요해.
있는 힘을 다해야 해.
그나마 티피 곁에는 그녀를 응원하고, 그녀가 자신을 찾아가는 동안을 지켜봐 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녀가 옳은 길을 가도록 질타하고, 위로하고, 같이 싸워주고, 같이 울어주는 정말 좋은 친구들.
우정과 사랑과 가족문제와 가스라이팅을
완벽하게 버무려 놓은 이야기가 참 매력적이다.
셰어 하우스라는 제목에서 연상되는 갖가지 이야기에 달콤 살벌한 이야기를 양념으로 뿌린 새로운 맛의
이야기.
저스틴의 교묘함을 알아 갈수록 소름이 끼쳤다.
아마도 많은 여자들이 그런 가학적인 사람에게 빠져 자신감을 잃은 채로 그들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주위에서 알아채지 못하거나,
알게 되더라도 잔소리로 상처만 주는 경우가 더 많을 거 같다.
그런 면에서 이 이야기에 나오는 레이첼, 모, 거티는 티피의 친구로서 그녀가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스스로 그 상황을 타계할
용기를 주는 친구들이다.
그들의 믿음과 응원과 사랑이 없었다면 티피는 어쩜 지금도 저스틴의 아파트에서 그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티피를 바라보는 리언은 티피에게서 엄마의 모습을 본다.
나쁜 남자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던 엄마는 그들 형제에게 언제나 걱정이자 분노였다.
하지만 리언을 기다릴 줄 알았다.
섬세하게 배려하는 그 모습 때문에 나는 이 이야기가 좋다.
쪽지로 도배가 된 작은 집.
한 침대를 나눠서 사용하는 남자와 여자.
밤과 낮의 경계로 한 공간을 나누어 가진 사람들.
얼굴은 모르지만 쪽지로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
상처를 치료할 시간을 기다려 줄줄 아는 사람들.
언제나 든든한 지원군으로 곁에 있을 줄 아는 사람들.
잘못된 사랑으로 아파하는 사람.
친구에서 연인이 된 사람.
가학적인 사랑과 안온한 사랑.
이 모든 것들이 컬러플한 털실로 잘 짜인 목도리 같은 이야기
셰어 하우스.
서로를 위해 거침없이 싸우지만
서로를 위해 아낌없이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셰어 하우스.
가을에서 겨울로 변해가는 계절에 잘 어울리는 따뜻한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