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 헌터
카린 지에벨 지음, 이승재 옮김 / 밝은세상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카린 지에벨의 단편을 얼마 전 읽었다.

장편은 어떨까? 싶도록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작품 [게임 마스터]

이번에 지에벨의 신간 사이코 헌터는 제목처럼 흥미로운 소재이다.

 

바로 '인간사냥' 이라는 주 재료에 집단 폭행이 낳은 살인의 광기가 또 하나의 몰이사냥꾼을 만들어 내는 곁가지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제각각 하나의 소설로 완성될 만큼의 이야기인데 어떻게 저 얇은 책에 그 두 가지 요소를 합쳐 놓았는지 읽으면서도 감탄하게 된다.

 

인간 본성에 잠재되어 있는 사냥꾼의 기질.

우린 모두 정착하기 전에 수렵인이었다는 유발 하라리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이 책에는 인간 사냥에 맛 들인 사냥꾼들이 나온다.

 

노숙자 레미는 무차별 폭력을 당하는 어떤 남자를 구해준다.

그리고 그 남자는 레미에게 일자리를 제안한다.

자신을 도와준 고마움의 표시로.

 

한 달에 1200유로. 게다가 숙식까지. 그것도 성에서.

 

 

아무 의심 없이 제안을 받아들인 레미는 그곳이 사냥터라는 걸 모른다.

성으로 가장한 인간 사냥을 위해 마련된 은밀한 사냥터라는걸.

 

 

 

 

 

 

 

디안.

그녀는 사진작가다.

업무차 출장을 온 디안은 새벽부터 바지런하게 움직이다 봐서는 안될 것을 보았다.

마을의 사냥꾼들이 한 남자를 무차별 폭행하다 그를 죽인다.

처음엔 그저 그런 시빗거리로 시작되었지만 그 남자에게서 얼마 전 살해당한 여자의 사진이 나오자 사람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제어할 수 없는 집단적 폭력.

그리고 일어난 죽음.

그리고 완전범죄를 꿈꾸던 그들에게 그녀의 존재가 발각된다.

 

기회가 없어 못했을 뿐, 작은 불씨 하나만 지펴주면 저열하고 비천한 본능을 폭발시키는 게 바로 인간들이다. 하지만 과연 모든 인간들이 다 그럴까?

 

 

한쪽에서 인간 사냥을 즐기는 자들이 자신들이 섭외한 사람들을 도망치게 풀어놓고 사냥개를 풀어 몰이사냥을 한다.

한쪽에선 살인을 목격한 여자를 4명의 사냥꾼들이 찾기 위해 추격을 한다.

도대체 이 이야기는 어떻게 끝이 날까?

 

포식자들의 먹잇감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노숙자나 불법체류자들이었다.

없어져도 아무도 찾지 않을 그런 사람들.

 

시장의 법칙, 그건 바로 수요와 공급이다.

그 수요와 공급이 바로 그의 눈앞에 있었다.

그가 상상했던 사냥에 참가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금액을 기꺼이 내놓을 고객들이 주변에 널려있었다.

평생, 단 한 번도 즐겨본 적 없는 최고의 사냥을 위해서.

 

 

레미는 자신처럼 그곳에 붙잡혀 온 불법 체류자들과 함께 생사를 거는 도망자가 된다.

출구 없는 사냥터에서 살기 위해 맹렬하게 도망쳐야 하는 그들.

그리고 그들을 재미 삼아 쫓는 사냥꾼들은 시시각각 그들을 향해 다가온다.

노숙자 레미와 말리에서 온 사르한 체첸에서 온 형제는 사력을 다해 도망치지만 도망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죽음을 피해 낯선 세계로 도망 친 형제는 결국 사지를 벗어나 죽음의 대가를 치르는 곳으로 자진해서 걸어온 셈이다.

그들에겐 이 세상 어디에도 평화로움은 없겠지. 죽음까지도 고통스러웠을 뿐이니까.

그래도 서로가 서로를 보듬고 도망치는 모습에서 인간의 다른 본성을 보게 된다.

 

악에 물든 본성과 어떤 식으로든 맺게 되는 끈끈한 결속력.

무전유죄의 법칙과 살아남은 자는 침묵해야만 한다는 사실.

그리고 진실에겐 누구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는 사실.

사람들은 허황된 진실보다는 날조된 현실을 더 믿는다.

 

지에벨의 이야기는 인간 본성의 원초적 감정선을 건드리는 힘이 있다.

그리고 모호하게 끝맺음을 하는 인간관계도 있다.

쥘리라는 여자와 연관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다 언급되지 않은 이야기가 찜찜하게 남아 있다.

디안은 쥘리와 어떻게 아는 사이일까?

언급되지 않은 건 잊을밖에.

 

어차피 그들은 아름다운 시월의 어느 날,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살인자가 되어있었다. 그들 중 하나가 재범을 하거나 말거나 그런건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은 끔찍한 '말기' 상태에 도달해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상대적으로 상황을 바라볼 뿐...

 

 

이 희생자들 중에 죽어 마땅한 사람이 있었을까?

오로지 자신들의 욕구를 위해 동물이 아닌 같은 종을 살해할 이유가 있을까?

순간의 광기를 거두지 못해 모두 살인자가 된 그들은 어떻게 평생 그 짐을 지고 살아갈까?

그중엔 아무런 짐도 지고 가지 않는 무감각한 사람도 존재한다.

 

이 책은 다 읽고 나서도 끝없이 쫓기는 기분이 드는 책이다.

사냥꾼들이 모두 살아남아서 그런 거 같다.

어떤 처벌도 없는 이 이야기 앞에서 무력해지는 나 자신을 본다.

어쩜 지에벨의 세계는 현실과 가장 가까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자잘한 죄들은 무거운 벌을 받지만

커다란 죄들은 단죄하지 않는 이 현실의 세상이 사이코 헌터들이 사는 지에벨의 세상과 다를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하나의 위험을 건너뛰면 곧바로 다른 위험이 닥쳐 오는 세상.

지에벨이 말하고자 하는 세상이 아닐까?

 

오늘 밤은 무작정 도망 다니는 꿈을 꾸게 될 거 같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여느 날과 똑같은 하루가.

대수로울 것 없는 하루가.

양심의 가책을 벗어던진 살인범은 무고한 시민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닮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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