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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실한 마음 ㅣ 델핀 드 비강의 마음시리즈 1
델핀 드 비강 지음, 윤석헌 옮김 / 레모 / 201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아주 빠르게, 테오는
자신에게 기대되는 역할을 해낼 수 있게 되었다. 표정 없이, 시선을 내리깔고, 최대한 아껴서 말을 내뱉었다. 자신을 드러내지 말 것, 경계선으로
나뉜 두 진영에서 침묵이야말로 가장 안전한 최고의 방책이다.
누군가는 위험을 감지하는 눈을 가졌다.
그건 마음의 눈이다.
고통을 겪은 사람은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을 알아보는 법이다.
하지만 규칙과 사회적 관습과, 방어하는 마음과 방심하는 마음과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는 마음들에 의해 종종 묵살되고
만다.
그리고 정말 어찌 손을 쓸 수 없을 때에 가서야 우왕좌왕 책임질 사람을 갈구할 뿐이다.
12살. 이제 곧 13살이 되는 테오에겐 이혼 한 엄마와 아빠가 있다.
일주일씩 번갈아 엄마, 아빠와 함께 지내야 하는 어린 테오는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고 감정의 시작 지대에서 어설픈 눈치만
늘어간다.
눈치는 침묵의 방법을 알려 주었다.
그저 아무 말 하지 않는 게 둘 사이에서 살아남는 법이니까.
어른들은 자신들의 고통 때문에 아이의 고통을 어루만질 수 없다.
아이는. 아이니까 잊어버릴 거라 생각한다.
아이의 마음이 어떤지 다정하게 물어보는 부모는 없다.
얼마나 아픈지, 얼마나 그리운지,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외로운지...
엘렌은 교사로서 그리고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받은 학대로 인해 테오에게 문제가 있다는 걸 직감으로 느낀다.
하지만 표면상 아무런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학교에서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
그저 좀 신경을 써서 지켜보라는 말 이외엔 그들도 딱히 나서서 문제를 드러나게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어린 테오는 마티스라는 친구가 있었지만 그 어린 친구가 그의 고통을 덜어 줄 순 없었다.
곁을 주지 않는 엄마와 점점 무너져가는 아빠 사이에서 테오의 이야기를 들어 줄 어른은 아무도 없었다.
아이들은 자신의 부모를
보호한다. 그 무언의 약속은 때때로 아이들을 죽음으로
이끈다.
이 말이 복선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학대만 학대가 아니다.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함도 학대일 수 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 한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데도.
충실한 마음.
가족에게 가져야 하는 이 마음은 무엇일까?
무엇인데 스스로 침묵하게 하고, 외면하게 하고,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행동하게 할까?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마음이
결국은 해친다는 걸 알게 된다.
그게 누군가일 수도 있고, 그게 나일 수도 있다.
익명이라는 가면을 쓰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람들을 학대하는 사람도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모르는 사람이 쓴 글자에 피멍이 드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 또한 가슴에 묻어 버린다.
그것들은 차곡차곡 쌓여 결국 그들을 죽음의 강 위로 던져 버린다.
어떻게 해야 옳은 걸까?
나는 충실한
사람일까?
내가 이렇게 혹은 저렇게
한 말이 충실하다 할 수 있을까?
내가 이렇게 혹은 저렇게
한 행동이 충실하다 할 수 있을까?
충실한 마음의 가닥을 아직 다 모르겠다.
내가 충실한 사람인지도 잘 모르겠다.
델핀 드 비강의 이야기는 처음이다.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이다.
작가는 우리에게 해답을 주지 않는다.
답은 우리 각자가 각각의 영역 안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충실하되
감각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