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의 인물들을 이렇게도 되살려 놓을 수 있구나.
그들의 면면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시대를 살아가는 모양새와 눈 높이를 이렇게도 짐작할 수 있겠구나.
실세들의 무논리가 단죄하는 서학자들의 무차별한 죽음이 오늘날의 이야기와 별반 다를 것이 없으니
임금의 시름 앞에서 내 마음도 덩달아 시름시름 거렸다.
이 나라가 누구의 것이었는지 아주 오래전부터 허기진 백성의 것도
시름 깊은 임금의 것도 아니었음을 주억거릴밖에.
색다른 소설의 느낌은 문장에서, 이야기의 흐름에서 새로운 기운을 뿜어낸다.
아름답고도 기발하고, 기발하면서도 기괴하기도 한 이야기가 한 폭의 그림 속에 있었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300년 후의 조선에서 어떤 의미가 되는지 상상할 수 없었던 이야기가 흐른다.
내가 그랬듯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한 번쯤 최후의 만찬을 검색해서 들여다보았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산이 그 산이었을까?
왼쪽 두 번째 그림의 유다가 과연 그였을까?
지어낸 이야기임을 알면서도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책을 읽으며 간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