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만찬 - 제9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서철원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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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꿈을 이끌고 저 세상의 낙원을 건설하려는 마음은 임금도 약용도 같았다. 임금이 가리키는 저 세상의 골짜기로부터 이 세상은 언제나 불완전했다. 비선들의 종횡과 실세들의 농단으로 이 세상은 날마다 끓어올랐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장영실.

최후의 만찬과 서학.

프리메이슨과 카메라 옵스큐라.

뒤주 속에서 아비를 잃은 임금과 그 신뢰를 받고 있는 약용.

 

 

실존 이름들이 나열된 이 소설에서 나는 무엇을 기대했는지를 잊었다.

문장 문장 사이로 시간이 흘렀다.

문장 문장마다 아름답다 못해 절절해지는 마음이 먼저 앞선다.

 

 

혼불 문학상.

나는 이 문학상의 수상작을 이번에 처음 읽었다.

예사롭지 않은 문장들 사이로 예사롭지 않은 이야기가 흘렀다.

변주된 가야금처럼 날것의 문장들만 보아오던 눈이 넌즈시 무언가를 살짝 덮어 놓은 문장들에 숨이 막힌다.

 

 

현실 속에서 비현실을 본 느낌이다.

 

 

 

이렇게도 이야기가 엮일 수 있구나.

스스로 자취를 감춘 장영실이 저 멀리 이탈리아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만날 수도 있었겠구나...

 


역사의 빈틈을 교묘히 파고들어서 더할 나위 없는 이야기 한 편을 만들어내는 솜씨.

 

 

 

 

 

 

세상은 선으로 채워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두는 악을 허물고 선의 향기만을 원했다. 악이 무너진 자리에 선의 향기가 솟기를 바랐으나 악이 무너진 자리에선 새로운 악이 움트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이야기의 끝은 마치 환상특급을 보는 느낌이다.

내내 같이 읽어가는 이들이 한순간 알 수 없는 이들로 나타내어지는 모습은 이 소설 속에 숨겨져 있던 판타지였다.

김혁수는 보았으므로 알았다.

서학인을 박해할 이유가 이념에 있는지, 사상에 있는지, 학문에 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주자를 거스르는 이유 하나로 삿된 무리가 되어 몸을 버려야 하는 조선의 망상을.



실존의 인물들을 이렇게도 되살려 놓을 수 있구나.

그들의 면면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시대를 살아가는 모양새와 눈 높이를 이렇게도 짐작할 수 있겠구나.

실세들의 무논리가 단죄하는 서학자들의 무차별한 죽음이 오늘날의 이야기와 별반 다를 것이 없으니

임금의 시름 앞에서 내 마음도 덩달아 시름시름 거렸다.

이 나라가 누구의 것이었는지 아주 오래전부터 허기진 백성의 것도

시름 깊은 임금의 것도 아니었음을 주억거릴밖에.

색다른 소설의 느낌은 문장에서, 이야기의 흐름에서 새로운 기운을 뿜어낸다.

아름답고도 기발하고, 기발하면서도 기괴하기도 한 이야기가 한 폭의 그림 속에 있었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300년 후의 조선에서 어떤 의미가 되는지 상상할 수 없었던 이야기가 흐른다.

내가 그랬듯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한 번쯤 최후의 만찬을 검색해서 들여다보았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산이 그 산이었을까?

왼쪽 두 번째 그림의 유다가 과연 그였을까?

지어낸 이야기임을 알면서도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책을 읽으며 간절해진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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