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의 밤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박솔뫼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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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안의 가장 큰 세계

아르테의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를 처음 만났다.

박솔뫼 작가의 인터내셔널의 밤으로.

 

 

여자에서 남자가 된 한솔은 부산으로 내려가는 기차를 탄다.

친구 영우의 결혼식에 참가하기 위해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가기로 결정한 한솔의 머릿속엔 생각이 그득하다.

그리고 대전역에서 옆자리에 앉은 여자는 앉기가 무섭게 자리를 양보해 달란다.

한솔은 말없이 자리를 양보한다. 그리고 탐정소설을 읽는다.

 

 

종교로부터 도망쳐서 부산행 열차를 탄 나미는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말을 건다.

누군가 자신을 쫓을 거라 마스크까지 써가며 주의를 기울였지만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는 그런 주의를 기울일 수 없다.

 

 

친구의 결혼식을 위해 부산에 가는 한솔과

도망쳐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부산으로 가는 나미는 그렇게 서로의 옆자리를 채워준다.

 

 

 

어떻게 주민등록에서 도망칠 수 있을까, 어떻게 모르는 사람으로 사라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은 매일 밤 잠자리에서, 물론 매일 밤은 아니지만 자주 반복되는 생각이었다.

 

 

작은책도 박솔뫼 작가도 처음이다.

낯설은 모국어의 글자들이 머릿속에서 춤을 춘다.

뭐지? 이야기는?

 

 

생각의 흐름대로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상 작용으로

이 이야기를 하다 어느 순간 저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를 하는가 싶으면 어느새 이 이야기를 한다.

 

 

그것이 기승전결에 길들여진 내게는 넘을 수 없는 고지처럼 느껴졌다.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야기의 시작과 절정과 끝은 어디란 말인가!

 

 

 

배제를 알지 못하면 배제를 배워야 할 것이다.

밖에서? 세상에서?

 

 

이 이야기의 흐름에서도 배제를 알아야 한다.

한솔과는 다른 이유로.

 

 

새로운 시작이다.

두 사람의.

 

 

자신의 과거와 안녕하고 새로운 자신을 만나러 가던 그 둘이 우연히 옆자리에 앉았던 거다.

알 수 없는 인연의 끈으로 그들은 서로의 시작이 외롭지 않게 옆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주어진 자리 대신 서로의 자리를 바꿔 앉는다.

 

 

새로운 시작과 자리바꿈.

한솔과 나미의 모습이다.

 

 

항구도시 부산엔 외국인들이 많이 다닌다.

어떤 의미에서 한솔과 나미 역시 이방인이다.

과거를 잊고 낯선 곳에서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할 준비가 된 두 사람의 모습은

불안정하면서도 안정적이다.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는 것.

그것은 불안을 안정으로 바꾸는 진정제 같은 효과가 있다.

 

 

생각의 타래들이 이 작고 얇은 책을 길게 늘여준다.

마치 범퍼카를 탄 기분이다.

이렇게 쿵

저렇게 쿵

이리저리 요리조리 달리며 부딪히는 순간의 충격이 흥겹게 온몸으로 전해진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거처럼 읽혔던 글들이 어느 순간 내 머릿속에서 저절로 방향을 잡아 같이 움직인다.

첫 장부터 작가의 말까지 이 이야기는 기승기승하다.

생각의 흐름을 차단하지 않고 그대로 옮겨 쓴 거 같은 이야기는 일관성 없게 일관되어 있다.

이 독특함이 이 이야기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부산행 기차와 탐정소설

부산항 여객선과 일본

자신의 세계에서 도망쳐 나온 젊음

 

 

밤은.

낮보다 이러한 것들을 더 잘 포용하지.

 

 

 

지금은 서로를 보고 있지만 왠지 먼 곳에 있을 각자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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