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었지만 잊지 않은 것들 - 의사가 되어 아버지의 죽음을 생각하다
김선영 지음 / Lik-it(라이킷)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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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 암은, 아니 모든 질병의 말기는 자율성의 박탈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스스로 움직이고, 대소변을 처리하고, 먹고 자고, 깨어 있는 것이 어렵게 되고 늘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이다. 이 기간이 길어질수록 환자의 인격과 존엄을 지키기 어려워진다. 사실, 이것이 죽음에 임박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하고도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담낭암으로 중학교 때 아버지를 잃은 소녀는 커서 종양내과 의사가 된다.

매일 암 환자를 대하며 그녀는 아버지를 떠올린다.

 

아버지가 투병생활을 하는 동안 곁에서 간호했던 어머니는 투병일기를 썼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번갈아 썼던 일기는 아버지 사후 책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책을 모두 없애버렸다.

 

어른이 된 그녀는 헌 책방에서 부모님의 투병일기인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이라는 제목의 책을 찾아낸다.

그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느꼈던 병에 대한, 의료진에 대한, 주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자신의 환자와 그 환자의 가족들에게서 부모님과 자기 자신을 본다.

 

 

 

1부와 2부는 주로 의사 입장에서 환자와 환자의 가족들을 부모님의 상황에 비추어 이야기하고 있다.

환자의 고통과 환자를 돌보는 가족의 고통

그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너무 많은 환자를 담당하는 담당의로서 모든 환자에게 충분한 시간을 내어주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현 시스템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들 곁에서 묵묵히 그들을 돌봐주지만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의료진들의 모습까지 너무도 담담하고 이성적으로 써 내려간 글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가졌던 서운함에 대해 반성을 하게 된다.

 

 

 

 

 

 

 

 

약제 투여든 시술이든 수술이든, 환자에게 무언가를 하고, 환자가 좋아지는 것, 그것이 의사가 되려는 이들이 꿈꾸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런 것도 의사가 하는 일들 중 하나다. 불필요한 것을 안 하는 것. 환자와 가족에게는 변명처럼 들릴 것 같은, 죽음을 앞둔 상황에 대한 대화를 지속하는 것. 그리고 그들의 곁에 있는 것.

 

 

 

병원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병원에 갈 때마다 알 수 없는 숨 막힘 때문에 긴장을 바짝 하게 된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병원을 가지 않는다.

문병도 될 수 있으면 피했지만 나이 들어감에 따라 병원은 갈 수밖에 없는 곳이 되었다.

 

나 자신의 아픔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직은 보호자로서 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개인적으로 나는 2년 전의 기억이 오버랩되는 바람에 이 책을 읽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다행히 우리의 주치의는 저자와 비슷한 성향의 여의사였고, 그분의 자상함과 미소가 환자였던 어머님에게는 커다란 위안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을 때마다 그 선생님이 생각났고

어머님이 겪으셨던 고통의 강도를 내가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이 책을 조금만 빨리 알았더라면 마음의 준비를 더 잘했을 텐데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집에 암 환자가 있다는 사실은 가족 모두의 마음을 어둡게 한다.

그리고 두렵게 한다.

나이가 많아도 죽음은 언제든 두려운 것이다.

 

환자의 고통에 대해서

환자를 돌보는 가족의 슬픔과 동시에 찾아오는 자책감들은 겪어 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나 역시 그랬다.

 

 

 

 

 

병원에서 슬픔을 공부할 기회는 언제나 있지만, 그것을 일상에서 건져 올리기는 쉽지 않다. 이것부터 시작하자. 죽음을 안다고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 타인의 슬픔의 깊이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저리 너머 저 심연에 있음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존중하는 것.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언젠가는 내게도 올 그 죽음에 대해 나는 어떤 준비가 되어 있는지.

그것이 평안하게 오길 바라지만 그렇지 않았을 때 나는 어떻게 그것을 받아 들여야 하는지.

내 가족들이 나보다 더 큰 고통을 겪지 않게 하려면 내가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지.

 

아무도 해주지 않은 이야기를 이 책이 해주고 있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이야기를 이 책이 가르쳐 주고 있었다.

 

내가 겪어 보지 않았을 때 나는 정말 무지했었고, 그 과정을 겪고 있었을 때는 더 무지했었다.

 

 

 

 

 

 

3부에는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그래서인지 글이 유머러스하다.

그리고 의사로서 개인으로서 자신에게 암이라는 병이 찾아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있다.

 

아직 창창한 나이에 뭘 그런 걸 미리 생각하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죽음이나 병은 어떤 예고도 없이 불시에 아무 나이에나 찾아오는 것이다.

그러기에 죽음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보다는 미리 생각해두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삶의 지혜 중에 가장 중요한 지혜는

아픈 사람을 대하는 지혜라고 생각한다.

그중에도 죽어가는 병을 안고 있는 이와 그 곁을 지키는 가족을 대하는 지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중요한 지혜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용기를 준답시고 헛된 희망을 주고, 안타까운 마음에 온갖 정보를 가져다주며 관심을 보이는 것 자체가 고통이라는 걸

겪어 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르니까...

 

이 책에 그런 지혜가 담겨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읽어서 그런 결례를 저지르지 않았으면 한다.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이는 힘이 있다.

하지만 말기 암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는 그런 것들이 아무 소용이 없음을 그들도 알았으면 좋겠다.

오히려 고통을 가중시키는 일들임을 알았으면 좋겠다.

 

이 한 편의 에세이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암이라는 병에 대해

말기 암 환자와 그 가족을 대하는 방법에 대해

그 어떤 이야기 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 미리 대비하는 것이 왜 필요한지도 잘 알려주고 있다.

 

 

 

환자를 위한 '최선' 에는 최신 항암제도 있지만, 한편 보다 적극적으로 수술이나 방사선 치료를 추가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고, 반면 항암제를 쉬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도록 권유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즉 처방보다는 결정에 핵심이 있는 역할. 그 역할이 지닌 무게와 책임을 어려워하면서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이 일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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