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내가 죽은 집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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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나 역시 그 오래된 집에서 죽은 게 아닐까. 어릴 적 나는 그 집에서 죽었고, 그대로 내가 맞이하러 오기를 계속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누구에게나 옛날에 자신이 죽은 집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그곳에 그저 죽어 있는 자신과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모르는 척 할 뿐.

 



비채 X 히가시노 게이고 컬렉션 시리즈.

옛날에 내가 죽은 집.은 게이고의 초기 작품이다.

오래전 다른 출판사에 출간된 적이 있으나 이번에 비채에서 새롭게 출간하였다.

 

 

 

[저의 야심작, 자신 있게 추천합니다.]

 

 

 

게이고 자신이 추천하는 자기 작품이다.

1994년에 출간 이래 일본에서만 75만 부가 팔렸다니 게이고 팬이라면 안 읽은 사람이 거의 없을 작품이다.

 

 

 

사야카는 7년 전 나를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한 전 여친이다.

얼마 전 동창회에서 만났지만 별 얘기 없이 헤어졌다.

그러고 며칠 뒤에 사야카가 전화를 걸어와 만나자고 한다.

거절해야 마땅했지만 사야카의 목소리에서 거절하기 힘든 무언가를 느끼고 나는 사야카를 만나러 간다.

 

그녀가 내민 사자머리 모양의 열쇠와 지도.

돌아가신 자신의 아버지가 남긴 유물이라 했다. 어릴 적 기억이 하나도 없는 사야카는 이 유품이 자신을 어린 시절로 데려다줄 거라 믿는다. 그래서 자신을 잘 아는 그에게 같이 가달라고 한다.

 

아무도 살지 않는 외딴곳에 있는 별장 같은 집엔 사람이 살았던 흔적만 남아있다.

마치 갑자기 어디론가로 증발해버린 듯한 느낌이 드는 집은 출입문도 모두 봉해져있고, 유일하게 지하실로만 드나들 수 있었다.

그 집의 모든 시계는 11시 10분에 멈춰져있다.

그 집에 살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사야카의 아버지는 왜 이곳을 드나들었을까?

그 집은 사야카랑 무슨 연관이 있을까?

 

이 이야기의 배경은 그 이상한 집이다.

그곳에서 사야카와 나는 그 집을 둘러보며 그 집에 살았던 사람들의 과거를 파헤친다.

유스케라는 소년의 일기장으로 시작해 점점 알 수 없는 과거의 일들을 추리해 나가는 과정에서 알게 되는 소름 돋는 이야기들.

 

아동학대와 부모의 강요.

말하지 못할 죽음들.

숨겨진 비밀들이 서서히 드러나는 이야기를 읽으며 내가 생각했던 관점과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귀신이 나오거나 끔찍한 참상을 보거나, 무서운 이야기를 대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으시시하고, 뭔가 터질 거 같은 긴장감에 조마조마한 마음을 가지고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무섭지 않은 데 무섭고

겁나지 않는 데 겁이 난다고 해야 하나.

 

마지막에서 터져 나오는 반전의 실타래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라 더 소름 끼친다.

상세한 묘사가 없기에 더 상상하게 되는 비극이 이 이야기의 묘미인 거 같다.

제목 때문에 호러물처럼 생각했는데 이것 역시 예상을 빗나갔다.

여러모로 독자들의 예상을 뒤엎는 소설이다.

 

 

 

신세가 많았습니다. 나는 역시 나일 수밖에 없다는 걸 믿고 앞으로도 살아가려 합니다.



사야카가 보낸 마지막 편지의 글은 그녀가 그 모든 것을 감당하고 자기 자신으로 살겠다는 의지였다.

기억의 봉인이 풀어진 지금에야 그녀는 스스로를 이해하고 맞아들이는 일을 하고 있음이다.

 

가해자는 잊어버리지만 피해자는 계속 되풀이되는 시간을 산다는 이야기를 어느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자신이 왜 그러는지를 몰라서 괴로웠던 시간은 이제 사라질 것이다.

그녀가 스스로의 고통을 되씹지 않으며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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