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내 폭력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아무리 사과를 받아도 절대로 회복될 수 없는 기억을 지니게 만든다.
그것이 경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나는 경을 이해하지만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부모의 그늘을 벗어났다고 생각하고 살았지만 진정 벗어나지 못한 경이었다.
부모를 닮고 싶지 않은 자식은 닮고 싶지 않아서 더 닮아가는 자식이 될 수도 있고,
부모를 닮고 싶지 않아서 더욱더 노력해서 부모보다 훨씬 나은 부모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걸 믿는 사람이다.
자신이 어떤 인생을 살지를 결정하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이다.
경은 어른이었지만 덜 자란 어른이었다.
경은 벗어나려고 했지만 결국 벗어나지 못했다.
자신의 모든 것은 부모 탓을 하며 살아낸 결과였을 뿐이었다.
불행만이 나의 몫인 것처럼...
진은
1970년대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미국에 왔다.
그가 교수로 재직했던 대학에서 아시아인은 그 한 명뿐이었다.
인종차별과 언어 장벽의 틈바구니에서 치열한 경쟁을 해야만 했던 진.
그에게 가정은 휴식처이자 스트레스 해소처였다.
잘못된 것 모두를 아내 탓으로 돌렸다.
진 역시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이었다.
아이가 투정 부리듯 떼쓰듯. 그렇게 매에게 매질을 했던 것이다.
매는
의지했던 남편의 돌발적인 행동에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았다. 처음엔.
영어를 모르고, 아들과 낯선 곳에 팽개쳐진 그녀에게 날아온 매질은 자신을 산산이 부셔 놓았을 것이다.
그녀에게도 분풀이가 필요했고, 때마침 아들 경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진이 달라진 그 18년의 시간 동안 자신을 갈고닦았다.
자신의 안목을 높이고, 자신의 커리어를 쌓았으며 새로운 인생을 위해 막 첫 발을 내디디려고 마음먹었다.
슬프고.
치열하고.
부끄럽고.
고통스럽고.
잔인했고.
안타까웠다.
이토록 궁금하고 복잡한 마음으로 남겨두고 끝나버리는 이야기라니.
첫 소설의 위력이 이 정도라면 이후의 이야기들은 어떤 내공을 지닐 것인지 심히 궁금한 작가다.
아마도
범죄소설을 쓴다면 제대로 뭔가를 보여줄 것만 같은 그런 작가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