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나의 집 모중석 스릴러 클럽 46
정 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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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한국인 정 윤의 첫 장편소설. 안전한 나의 집.

2016년. 굿리스 '올해의 소설'

집이 안전을 보장하지 않으며, 핏줄이 사랑을 보장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소설 ㅡ 뉴욕 타임스


저기, 저 여자분....... 알몸인 것 같은데요.


경과 질리안은 아들 이선과 단란하게 살아가고 싶었으나, 현실은 빛 더미에 올라앉아 가지고 있던 집을 팔아야 할 참이다.

부동산 중개인이 그들의 집을 보러 온 날 숲 쪽에서 알몸인 채로 그들에게 다가오는 여자가 있었다.


 

"아는 분이에요?" 거티가 묻는다.

"경의 어머니인 것 같아요."

여자는 한 손으로 가슴을, 다른 한 손으로는 음부를 가렸다. 경은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이 착시 현상이나 거리와 빛이 빚어낸 오해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의 어머니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로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잔잔할 거 같았던 글은 마치 범죄 스릴러를 능가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어릴 때 아버지의 진의 폭력에 맞서지 못했던 어머니 매와 아들 경.

불안에 떨던 아들은 아버지의 폭력이 어머니를 통해 자신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고스란히 겪으며 어른이 된다.

일찌감치 부모 곁을 떠나 선을 긋고 살았던 경은 부모님과 이웃하게 살면서도 왕래를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가 알몸으로 자신에게 오고 있었다.

아버지 짓이라는 사실에 경은 분노로 치를 떤다.

자신이 아버지의 폭력에 맞서 했던 한 마디가 그의 귀에 울린다.


 

 

 

두 번 다시 어머니를 때렸다간 가는 자기 손에 죽을 줄 알라고 아버지 진을 협박했던 게 대학교 1학년 때였다.

그의 협박은 꽤 효과적이었다. 진은 매주 한 차례씩 상담 치료를 받았고, 기도 모임과 성경 공부에도 열심히 매달렸다. 지난 십팔년간 그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살아왔다.

 

 

경찰인 장인과 처남이 지역 경찰과 함께 찾아오고, 경은 그들과 함께 부모님의 집으로 간다.

자신의 아버지를 처단하기 위해서.

경의 예상과는 다르게 부모님의 집은 강도가 들어서 처참하게 짓이겨져 있었고, 아버지 진도 그들에게 맞아 부상이 심했다.

경은 그곳에서 어머니 매와 가정부 마리나가 강도들에게 무차별한 폭력과 함께 강간을 당했다는 걸 알게 된다.

가정 내 폭력으로 점철된 어린 시절로 인해 경은 부모님과 그동안 거리를 두고 살았으나 이 범죄로 인해 갑자기 모두가 한 집에서 모여 살게 되었다.

매는 자신의 감정을 내비치지 않았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을 살아가려 한다.

진은 여전히 무뚝뚝하지만 손자 이선에게는 한없는 애정을 드러낸다.

경은 이 모든 상황을 견딜 수 없다.

아버지 진에 대한 감정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이들은 극복해내게 될까?

그랬다면 이 소설은 가정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범죄 심리 소설이라는 딱지가 붙은 건 다른 것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첫 페이지부터 긴장감을 갖게 만든 이 이야기를 중간에 덮을 수가 없었다.

이 책을 잡은 순간 끝장을 보지 않고서는 책을 덮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무엇보다 아내와 아이가 우선이 되어야 하는 것, 지극히 미국적인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그를 속박하고 있는 지구 반대편에서는 무조건 부모가 우선이다. 아이는 두 번째, 그리고 아내는 맨 마지막. 매와 진은 그를 그렇게 키웠다.

 

 

 

 

한국에서 태어나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 온 경은 미국식 교육을 받고 자랐으나 가정 내 교육은 그를 완전한 미국인으로 만들지 못했다.

 

경은 한국인과 미국인의 경계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는 아웃 사이더였다.

자신의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았지만 아버지가 된다는 것을 배우지 못한 경은 아이에게조차도 거리를 두려 한다.

어쩌면 자신의 유전자 깊이 각인되어 있는 잔인한 폭력이 언젠가 아들 이선에게 내비칠지 모르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경이지만 그래도 아슬아슬하게 잘 버티고 있던 참이었다.

그렇게 같이 있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있게 되었다.

팽팽한 긴장감에 읽고 있는 내 신경줄도 덩달아 팽팽해진다. 어디에서 일촉즉발의 사건이 터질지 알 수 없어 불안하다.

아버지를 믿지 못하는 경은 어머니에게 사실을 묻지만 매는 아들에게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늘 그렇듯 그들은 완벽하게 자신들의 가정을 아무 일도 없는 듯이 꾸며놓고 있었다.

경은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경멸한다.

아버지로부터 자신을 지키지 못했을 뿐 아니라 아들도 지키지 못한 어머니 매.

하지만 남들 눈에 매는 자상하고, 사려 깊고, 안목 높고, 상냥한 사람이고, 아버지 진은 특허권을 여러 개 가지고 있는 부자이며 유명 대학의 정교수이다.

아무도 그들 가정의 그늘을 알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당한 만큼 부모에게 되돌려주고 싶었다. 결코 이런 결과를 원했던 게 아니다. 단지 그들이 자신에게 입힌 상처를 똑똑히 봐주기 바랐을 분이다. 무의미한 연극을 더 이어가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그들에게 일어난 불행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을 손에서 놓기가 힘들었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가는 동안.


 

당신은 절대 변하지 않아. 당신도 알지? 누구도 당신을 막지 않아. 당신이 불행하길 바라는 사람도 없고, 나도, 이선도, 당신 부모도. 원한다면 우리 탓을 해도 좋아. 하지만 언젠가는 당신도 깨닫게 될 거야. 문제는 우리가 아니라 당신 자신이었다는 것을. 불행했던 과거에 대한 당신의 집착이 이렇게 만들어버렸다는걸!

 


경은 자신의 어린 시절의 불행을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았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 망령과 같은 존재였다. 늘 경의 감정을 조금씩 조금씩 갉아먹었다. 행복은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그 두려움. 자기 안에 부모님과 같은 모습이 담겨 있을 거 같은 두려움.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는다는 불안감.

 

어쩜 경은 아직도 부모의 품을 못 벗어난 어린 어른이 아니었을까?

 

세상에 ,어떡하면 그렇게 미련할 수가 있지? 자네가 백인이든 아시아인이든,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네. 난 자네가 흑인이었다 해도 상관 없었을 걸세. 자네가 내 딸과 사귀는 게 싫었던 이유는 자네의 더러운 성질 때문이었어. 딸 가진 아버지의 눈엔 다 보이거든. 난 자네를 보자마자 아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바로 알았지. 이 세상 그 무엇도 자네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없다는 걸 말일세. 아무리 좋은 아내를 품고 있어도, 예쁜 자식과 좋은 집과 좋은 직장이 있다 해도! 남들은 그런 것들을 누리지 못해 안달인데 자네는 전혀 그렇지 않았어.


가정 내 폭력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아무리 사과를 받아도 절대로 회복될 수 없는 기억을 지니게 만든다.

그것이 경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나는 경을 이해하지만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부모의 그늘을 벗어났다고 생각하고 살았지만 진정 벗어나지 못한 경이었다.

부모를 닮고 싶지 않은 자식은 닮고 싶지 않아서 더 닮아가는 자식이 될 수도 있고,

부모를 닮고 싶지 않아서 더욱더 노력해서 부모보다 훨씬 나은 부모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걸 믿는 사람이다.

자신이 어떤 인생을 살지를 결정하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이다.

경은 어른이었지만 덜 자란 어른이었다.

경은 벗어나려고 했지만 결국 벗어나지 못했다.

자신의 모든 것은 부모 탓을 하며 살아낸 결과였을 뿐이었다.

불행만이 나의 몫인 것처럼...

진은

1970년대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미국에 왔다.

그가 교수로 재직했던 대학에서 아시아인은 그 한 명뿐이었다.

인종차별과 언어 장벽의 틈바구니에서 치열한 경쟁을 해야만 했던 진.

그에게 가정은 휴식처이자 스트레스 해소처였다.

잘못된 것 모두를 아내 탓으로 돌렸다.

진 역시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이었다.

아이가 투정 부리듯 떼쓰듯. 그렇게 매에게 매질을 했던 것이다.

매는

의지했던 남편의 돌발적인 행동에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았다. 처음엔.

영어를 모르고, 아들과 낯선 곳에 팽개쳐진 그녀에게 날아온 매질은 자신을 산산이 부셔 놓았을 것이다.

그녀에게도 분풀이가 필요했고, 때마침 아들 경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진이 달라진 그 18년의 시간 동안 자신을 갈고닦았다.

자신의 안목을 높이고, 자신의 커리어를 쌓았으며 새로운 인생을 위해 막 첫 발을 내디디려고 마음먹었다.

슬프고.

치열하고.

부끄럽고.

고통스럽고.

잔인했고.

안타까웠다.

이토록 궁금하고 복잡한 마음으로 남겨두고 끝나버리는 이야기라니.

첫 소설의 위력이 이 정도라면 이후의 이야기들은 어떤 내공을 지닐 것인지 심히 궁금한 작가다.

아마도

범죄소설을 쓴다면 제대로 뭔가를 보여줄 것만 같은 그런 작가를 만났다.

이보게, 행복이 뭔지 모르는데 어떻게 행복 할 수 있겠나? 하지만 내 말 믿어. 상황은 언제든 변하기 마련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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