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3
스즈키 루리카 지음, 이소담 옮김 / 놀(다산북스) / 201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날씬해서 부러운 몸매가 아니라 가난해서 비쩍 마른 몸이다. 잘 씻어도 얼굴이 어딘가 지저분해 보이고, 여름에 반바지와 러닝셔츠를 입고 대자로 뻗어 낮잠을 자는 모습은 꼭 밭에서 방금 파낸 흙 묻은 우엉 같다.

좀 더 편한 일도 있을 텐데 엄마는 자기를 괴롭히듯이 일한다.

 

 

 

 

하나의 엄마는 홀로 하나를 키운다.

그녀의 직업은 막노동. 남자들 틈에서 홀로 일하는 강단 있는 엄마다.

개처럼 먹어대지만 절대 살이 찌지 않는다.

늘 반값 딱지가 붙은 음식들만 사 먹지만 그럴 수 있음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다.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하나는 엄마에게 유도 질문을 해보지만 절대 알 수 없다.

어쩜 흉악한 범죄자라 어딘가에 갇혀있거나 숨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든다.

아빠는 알 수 없지만, 하나는 엄마와 함께

부족하지만 부족하지 않게.

외롭지만 외롭지 않게.

가난하지만 가난하지 않게.

힘들지만 힘들지 않게.

즐겁게, 유쾌하게, 낙천적으로 살아간다.

14살 소녀의 첫 소설.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사실 이 책을 처음 받아 들었을 때 그저 눈물 빼는 이야기일 거라 생각했다.

14살 아이의 눈에 비친 엄마의 모습이 그저 미화되었을 거라는 나쁜 편견이 나에게 있었다.

별 기대 없이 읽게 된 이야기.

슬슬 읽어가다 이 두 모녀의 진가가 나타나는 대목을 만나게 된다.

안녕. 다나카.

나와는 너무나 먼 사람, 완전히 다른 세계의 사람은 질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같은 수준이나 계급인 사람에게 질투를 느끼는 법이다.

 

안녕. 다나카는 하루의 짝이 된 신야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다.

하루와 엄마의 이야기가 이어지다 갑자기 신야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어 조금 엉뚱했으나 이것이 진정한 고수의 엉뚱함이었다는 건 다 읽고 나야 느끼게 된다.

신야는 의도하지 않은 행동 때문에 졸지에 변태가 되어 학교 여학생들의 악다구니에 시달리는데 그 위기에서 신야를 구해준 건 바로 하나다.

6학년의 되어 하나와 같은 반 짝이 되었지만 신야는 여전히 하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지 못한 채 끙끙댄다.

신야는 사립 중학교에 가기 위해 시험을 보지만 모두 떨어지고 신야의 엄마는 그런 자식이 창피하다며 히스테리를 부린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며, 엄마에게 부끄러움을 주는 존재라는 이유로 죽음을 생각하게 되는 신야는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난 하나 모녀 덕분에 자신의 존재감을 되찾게 된다.

앞 부분 하나의 이야기의 백미를 장식하는 게 바로 신야의 이야기다.

남의 시선에 비친 하나 모녀의 모습은 가난하지만 즐겁고, 모든 면에서 긍정적이며, 언제나 따뜻한 마음을 간직한 사람들이다.

그런 엄마 품에서 자란 하나는 언제나 어디에서나 당당하다.

그런 모습이 신야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그리고 독자들은 잘 참고 읽어 오다 신야의 이야기에서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다.

어쨌든 살아있다. 엄마의 경계선은 늘 거기다. 아무리 크게 실패해도 살아 있다. 수치스럽지만 살아 있다. 죽을뻔했지만 살아 있다.

하지만 기준이 그거라면 세상의 거의 모든 일이 다 오케이이지 않을까?

 

14살 소녀의 시선은 어른들의 꾸며진 시선 보다 훨씬 담백하다.

그래서 그 담백 미가 책을 읽고 난 뒤에서 계속 은은하게 일렁인다.

어째서 천재소녀인지

어째서 사람들이 그녀를 그리 치켜세우는지 읽어 보지 않으면 모를 뻔했다.

꾸밈없는 시선에서 느껴지는 맑은 울림.

세련되지 않은 거 같지만 너무 세련된 표현들이 이 책을 잡으면 놓지 못하게 한다.

어떻게 이런 표현을 썼는데도 이렇게 딱 떨어질까?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슬플 때는 배가 고프면 더 슬퍼져. 괴로워지지. 그럴 때는 밥을 먹어. 혹시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슬픈 일이 생기면 일단 밥을 먹으렴. 한 끼를 먹었으면 그 한 끼만큼 살아. 또 배가 고파지면 또 한 끼를 먹고 그 한 끼만큼 사는 거야. 그렇게 어떻게든 견디면서 삶을 이어가는 거야.

 

 

삶의 연륜이 쌓인 사람만이.

배를 골아 본 사람만이.

죽기를 되뇌이며 살기를 각오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먹기 위해 살고

살기 위해 먹는

이 단순할 거 같은 삶의 의미를 이미 깨친 소녀 작가의 글은 다 큰 어른을 부끄럽게 한다.

하나는 결국 아버지의 존재를 모른다.

엄마의 과거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엄마의 말에서 그녀의 삶이 너무도 고독하고, 뼈저리게 고달팠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 엄마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의젓하게 바라보는 하나의 모습을 보듬어주고 싶었다.

삶이 고달플지라도

그걸 알아주는 하나 같은 딸이 있어

엄마의 고단함이 훨씬 수고로움으로 남을 거 같다.

그래서 홀로 떠나간 신야가 안타까우면서도 안심된다.

비로소 자신을 찾을 수 있는 공간에 있게 되었으므로.

스즈키 루리카.

그녀의 다음 이야기도 기대가 된다.

화려한 수식어 없이도 담백하게 쓰여진 이야기의 묘미.

요란한 감정 표현 없이도 담담하게 쓰여진 이야기의 깊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따스함.

앞으로가 더욱 기다려지는 작가를 만났다.

기존의 일본 작가에 대한 나의 편견을 씻겨준 작가이다.

루리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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