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적인 사람은 사실
선택적인 수다쟁이다. 내가 글을 쓰게 된 것도 어쩌면 최대한 피곤하지 않은 수다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책을 읽는 내내 나 자신의 정체성에 의구심이 든다.
여태 외향인으로 살다 내향인으로 변화한 건지
내향인인데 사회성 버튼을 일찍 누르는 법을 터득해서 외향인으로 살았던 건지.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경계에서 살다 급 피곤해져서 사회성 버튼을 고장 내버리고 내향인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어서.
어떤 대목에선 내가 작가님과 너무 닮은 성향이고,
어떤 대목에선 외향인 기질이 다분했던 시절이 생각난다.
예쁜 책이다.
자근자근한 이야기도.
페이지 사이사이 깨알 같은 질문과 답변도.
그 사이사이 담긴 그림들도.
사람의 의지라는 것은
강물이 아니라 우물물에 가깝다. 한꺼번에 너무 퍼올리면 바닥을 보이고, 다시 채워지려면 시간이 걸린다. 내향인의 의지가 소진됐을 때 가장 먼저
불이 꺼지는 영역이 다름 아닌 사회성이다. 그게 가장 많은 화력을 잡아먹는 공장이라서
그렇다.
내가 어떤 성향을 지녔는지 살펴볼 기회가 생겨서 안심되었던 시간이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까닥 없이 침잠해 있는 건 아닌지
집에만 있다가 바보가 되어 버린 건 아닌지
억지로라도 어울릴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지
내 성질의 지랄맞음이 점점이 늘어 90%를 넘어가는 건지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느라 고민했던 시간이 이젠 필요 없어졌다.
나는
내향인인데
외향인 가면을 쓰고 살다 방전된 거였다.
나를 안다고 하는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쓸모없이 에너지를 불태워버린 것이다.
우물이 차오르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금이었다.
늘 그렇듯
알고 나면 아무렇지 않은 것이
몰라서 걱정을 만든 거였다.
책 한 권은
아주 멀리 나를 데려가기도 하지만
아주 깊은 곳으로 나를 모셔가기도 한다.
이 책은
나를 깊이 있게 모셔갔다.
아주 가까웠지만 전혀 알 수 없었던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