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명강 시리즈 4.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에서 살겠습니까.
이 질문 같은 제목을 읽음과 동시에 드는 부정과 긍정의 두 갈래 길이 반반으로 내 머리를 울린다.
한국 밖에서는 살아본 적 없는 머리는 '아니'라고 대답하고
한국 밖에서 살고 있는 동생들의 말을 떠올리는 머리는 '네'라고 대답한다.
"돈 있음 한국이 젤 살기 좋아."
터전이 외국인 동생은 한국에 올 때마다 그리 말한다. 아마도 모국어를 마음대로 쓸 수 있고, 한식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건
두 번째 문제고, 일단은 그래도 안전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거 같다.
밤 문화가 발달해 있음에도 총기 휴대가 합법화되지 않고, 늦게까지 돌아다녀도 교통이 편리하고, 무엇이든 다 배달이 가능하고,
걸어서도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거리는 한국이뿐이라는 게 그네들의 생각이다.
자연재해에서도 비교적(?) 안전지대이고, 테러에도 안전한 나라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우린 휴전국가임에도 말이다.
그리고 우선은 돈 있으면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이 살 수 있는 곳이 또한 한국이란다.
무엇을 원하든 하루 아니면 이틀 이내에 해결이 되는 곳이 한국이라서.
하지만 정작 한국에 살고 있는 나는 그네들이 겪지 못하는 갈등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갈등도 만성이 되어 이젠 갈등처럼 느껴지지 않지만.
사회학적으로 풀어낸 한국의 현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는 동안 한국의 현대사를 사회적 관점에서 공부한 느낌이다.
우리가 생각하던 생각하지 않던 마음속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는 이 현실에 대한 모든 문제들을
하나하나 차례대로 이야기해주는 족집게 같은 책이었다.
정말 사회학에 대해서 1도 관심 없었던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사회학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하고, 들어야 하고, 누군가가 끊임없이 설명해주어야 하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통계와, 관점과, 방향 제시가 이 책안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는 나아갈 수 없다.
지금 이 정체된 시간은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문제를 위한 문제만을 앞세우며
나아가기 위해서가 아닌 과거에 머무르려 하는 사고방식들이 모이고 모인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한국전쟁 이후로 부단한 노력으로 나라를 발전시킨 세대와 그 세대의 피와 땀을 바탕으로 비교적 풍요로운 세상을 살아가는 세대와 그
두 세대 사이에 끼어서 과도기의 정체성을 가진 낀 세대들이 서로의 의견을 일치 시키지 못한 채로
자신들의 이익만을 고수하려는 사회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이다.
나는 끼인 세대다.
부모님 세대의 부지런함과 단결된 모습으로 허리띠를 졸라맨 모습을 보며 성장해서
풍요로움을 누리는 세대로 거듭나는 동안 사라진 많은 것들을 추억하며 사는 세대인 것이다.
세대마다 모두 고달픔이 있겠지만 어중간한 과도기 세대만큼 고달픔으로 점철된 세대가 있을까?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낸 적이 없다.
아마도 그것은 이쪽도 저쪽도 이해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과 지금 시절이 확연히 달라서 그 달라짐을 몸소 겪어낸 과도기 세대는 중간에서 주장을 내려놓고 있는
꼴이다.
3불. 불신, 불만, 불안의 사회는 아마도 리더십의 부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전쟁 이후 우리나라는 군사정권의 연속이었다. 그만큼 경제성장의 기틀은 빨리 마련했지만 정신적인 성장은 억눌려있었다. 그리고
국민의 손으로 찾아낸 민주주의 역시 구시대적인 정치인들의 손에서 곤죽이 되고 말았다.
정. 재계의 유착으로 나라는 유례없이 빠른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지만 그 속에서 곪아가는 인권과 노동자들의 권리는 일절 무시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