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소녀 라임 청소년 문학 38
킴벌리 브루베이커 브래들리 지음, 이계순 옮김 / 라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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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다, 너는 충분히 배울 수 있어. 너를 잘 모르는 사람이 한 말에 귀 기울이지 마. 네가 아는 것, 그러니까 너 자신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장애를 가진 발 때문에 엄마에게 모진 학대를 당하고 집 밖으로 나오지도 못한 채 학교도 다니지 않는 에이다.

방 한 칸짜리 집에서 엄마와 동생 제이미와 함께 살지만 엄마는 에이다를 쓸모없는 년이라고 부르며 걸핏하면 때리고, 싱크대에 가둬둔다.

글은 배운 적도 없고,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는 게 전부인 에이다의 삶.

생일도 크리스마스도 모르고 살고 있는 에이다에게도 바깥에서 불어오는 전쟁의 바람은 피할 수 없다.

독일군의 폭격에 대비해 아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라는 정부의 방침에 따라 제이미가 학교에서 다른 곳으로 떠나기로 한 날.

엄마 몰래 조금씩 걷는 연습을 했던 에이다는 제이미와 함께 집을 떠나 낯선 곳으로 향한다.

낯선 곳에 도착한 두 남매. 그러나 그 어떤 가정에서도 에이다와 제이미를 선택하지 않는다.

관리자 토튼 부인은 두 아이이들을 데리고 스미스씨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막무가내로 두 아이를 스미스씨에게 맡긴다.

그날로부터 세 사람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스미스씨는 에이다의 발이 내반족이라는 걸 알아보고 병원에 데려간다.

의사는 어릴 때 치료했었더라면 고칠 수 있었을 거라 말하고 완치는 안되겠지만 수술을 하면 걸을 수 있다고 말한다.

목발을 짚고 조금 자유롭게 걸을 수 있게 된 에이다.

아이들을 보살피지 못한다고 하던 스미스씨는 에이다와 제이미를 깨끗하게 씻기고, 옷을 사주었으며 음식도 배불리 먹인다.

간섭하지 않고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하는 스미스씨에게도 아픔은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낯선 곳으로 피난 온 아이들과 자신의 고통 속에 갇혀 외부와 차단하고 혼자 고립되어 고통을 되씹고 사는 수잔이 만남으로서 작은 울림이 생긴다.

옥스퍼드 대를 졸업한 수잔은 남자들의 세계에서 취직이 어렵게 되고, 결혼하기를 거부함으로써 가족과도 소원해지고, 의지가 되었던 친구가 죽자 삶의 의지를 잃은 채로 외롭게 살고 있었다.

그녀에게 보살핌을 제대로 받은 적 없는 외로운 두 아이들이 떠 맡겨졌다.

수잔은 엄마와는 다른 시선으로 에이다를 보고, 이끌어주고, 자신감을 갖게 해준다.

하지만 에이다는 이 많은 것들을 누리는 게 두렵다.

어차피 다시 되돌아가야 할 곳엔 이런 것들이 없으니까.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어쩐지 크리스마스는 나를 불안하게 했다. 함께 모인다, 행복하다, 축하한다는 이야기들에 나는 위협을 느꼈다. 내가 그런 것들에 익숙해지면 안 될 것 같았다. 게다가 이모는 내가 행복하길 바랐다. 나는 그게 더 무서웠다.

 

 

스미스씨라고 부르는 아이들에게 수잔은 자기를 이모라고 부르라고 한다.

이곳 생활에 적응되면 될수록 에이다는 점점 두려워진다.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에이다를 보며 가슴이 저릿저릿 해진다.

사랑받지 못한 아이는 누군가가 베푸는 작은 친절도 받아들일 줄 모른다.

평범한 것들도 에이다에게는 특별한 것이다.

이런 것들에 익숙해질까 봐 두려워하는 아이의 모습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나는 너무 많은 걸 가졌다. 그래서 몹시 슬펐다.

 

 

에이다의 발을 수술하기 위해 부모의 동의서가 필요하다.

그래서 수잔은 에이다의 엄마에게 편지를 쓰지만 감감무소식이다.

그러다 어느 날 반송되어 온 편지를 본다. 이사 갔다는 표시가 되어 있다.

실망한 아이들에게 수잔은 전쟁 때문에 잠시 거처를 옮긴 것이니 곧 연락이 올 거라 말한다.

전쟁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마을로 함께 피난 왔던 아이들은 부모들이 와서 거의 다 데리고 갔다.

에이다와 제이미만 빼고.

에이다는 수잔과 함께 하면서 글을 배우고, 조랑말을 키우고, 목발을 짚고 거리를 걷는다.

엄마가 알면 난리 날 일이다.

엄마 때문에 사람들은 에이다가 모자란 아이라고 생각해왔다.

장애가 발이 아니라 머리에 있다고 생각했다.


제 발은 머리랑 아무 상관이 없거든요.

 

 

이제 에이다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장애는 부끄러운 게 아니고 감춰야 할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사람들의 시선에서도 당당할 수 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받았던 학대는 가끔 그녀 마음속에서 뛰쳐나와 통제 불능이 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수잔은 그녀를 꼭 끌어안고 달래준다.

에이다에 의해 옷이 찢기고, 할큄을 당해도 놓지 않고 그녀를 안고 달래준다.

엄마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을 수잔에게서 받은 에이다에겐 그것이 두려우면서도 갖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전쟁이 코앞에 닥치고 많은 부상병들이 마을로 실려 온 날 에이다는 전쟁의 참상을 직접 목격하게 된다.

뉴스나 영화관에서 보는 영상에는 이런 장면들이 담겨 있지 않았다.

그저 피상적으로만 접했던 전쟁의 참상을 직접 확인한 에이다에겐 그날이 그녀의 전쟁에서 살아낼 방법을 알려준 계기가 된다.

 

 

마침내 내가  싸워야 하는 대상과 그 이유를 확실히 알았다. 그리고 엄마는 내가 얼마나 막강한 싸움꾼이 되었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보살펴주는 대가로 부모들이 매주 19실링을 내야 한다는 통지문을 받자마자 득달같이 달려와 아이들을 데려가기 위해 찾아온 엄마를 따라 다시 지옥으로 되돌아온 에이다.

엄마는 다시 손찌검을 하고, 그녀에게 외출을 불허한다.

 

 

 

 

 

​사는 게 팍팍하고 힘들다지만 자신의 아이를 이렇게나 방치하는 부모가 있다니 나로서는 이해가 불가했지만

세상에 널려있는 삶 중엔 이해 못 할 삶도 있는 법이다.

가족이라고 무조건 아끼고 사랑하고 그런 거 없다는 걸 아는 나이가 되고 보니 가족이라서 더 아프고, 더 상처를 주고, 더 괴롭히는 경우도 많다.

에이다와 제이미. 그리고 수잔.

이 세 사람은 고립된 삶을 살아가다 우연한 기회에 같이 살게 되면서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서로를 돌보며 가족보다 더한 가족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피를 나눈 사람들보다 정을 나누는 사람들이 더 가족에 가까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이야기. 맨발의 소녀.

요즘 의도치 않게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을 읽게 되었는데 다행히 살벌한 공포보다는 그 상황에서도 사랑과 희망과 의지를 불태우는 이야기들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될 수 있다.

에이다에겐 수잔이 엄마를 대신할 테고

수잔에겐 에이다가 곁에 있어줄 테니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서로 든든하게 살아갈 것이다.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 본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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