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들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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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트를 읽는다는 건

자욱한 안개에 잠겨 있는 숲길을 더듬어 걷는 것.

제발트를 읽는다는 건

화사한 햇살 아래 숲 우듬지 아래로 느리게 걷는 것.

제발트를 읽는다는 건

현실과 상상의 모호한 경계를 걷는 것.

제발트를 읽는다는 건

그런 것.

 

 

 

 


사자(死者)들은 이렇게 되돌아온다. 때로는 칠십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뒤에도 얼음에서 빠져나와, 반들반들해진 한줌의 뼛조각과 징이 박힌 신발 한켤레로 빙퇴석 끝에 누워 있는 것이다.

 

 

 

 

 

창비에서 제발트의 글이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이민자들과 토성의 고리.

내가 선택한 건 이민자들이다.

 

4명의 이민자들에 관한 이야기는 단편처럼 에세이처럼 사실처럼 이야기처럼 담겨있다.

사진들이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어쩜 그것조차도 제발트의 숨겨놓은 이야기일지 모른다.

4명의 이민자들 중 3명은 유대인이다.

그들이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다른 나라로  떠난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그들 마음속에서 그리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같다.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며 타국에서 삶을 마감한 사람들의 고통은 전혀 짐작도 못할 일이다.

두 사람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혼자 남았다는 사실은 끝끝내 그들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거 같다.

혼자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그들은 그들의 삶을 온전히 살아낼 수 없었다.

 

 

 

 


그의 목소리는 후두가 아니라 가슴 언저리에서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 그 때문에 파울이라는 사람은 함석을 비롯한 여러가지 금속부품으로 조립해놓은 기계이며, 어느 한군데가 조금만 고장나도 완전히 궤도에서 이탈해버리는 장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나를 에워싸고 있는 독일인들의 정신적 빈곤과 기억상실, 그리고 과거의 흔적을 철저히 지워버린 그들의 교묘함으로 인해 내 머리와 신경이 공격받고 있다는 사실을 점점 더 또렷하게 의식할 수 있었다.

 

 

 

 

 

 

이야기의 끝에서 나는 페르버의 고향을 찾아간다.

이 모든 이야기에서 나는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행을 한다.

과거를 짚어 가는 여행.

그곳에서 나는 독일인들의 망각을 보게 된다.

수많은 삶을 파괴한 그들은 정작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일상을 살아간다.

나는 그것을 견딜 수 없었다.

 

나.라는 화자에 대해 아무것도 나와 있는 건 없지만 나는 제발트로 짐작하고 읽어갔다.

읽어가면서 이것이 실화라고 단정 지었다.

진짜 살아있었던 사람들을 제발트가 만나고 기록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어쩜 이 모두는 제발트일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의 이야기이자 작가로서 하나의 사실을 눈여겨보고 그것에서 사실을 끄집어 내어 기록 형식으로 써 내려간 그 어떤 것이 바로 이 이민자들이다.

 

제발트 역시 이민자였으니까.

 

암브로스 아델바르트.

그는 나의 어머니의 외삼촌이었다.

일찍 이민을 가서 유대인의 집사로 일했다.

그는 독일인이었다.

그는 타국에서 자신이 모시고 있던 집안이 몰락하는 걸 지켜본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을 요양원에 입원시키고 말년을 전기충격요법을 받으며 그곳에서 죽는다.

그의 기록은 세세하나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남겨 놓지 않았다.

 

제발트의 글은

가랑비 같다.

언제 젖는지도 모르게 스며들어 적시는.

 

글을 읽는 동안 산책을 한 느낌이다.

아주 먼 곳까지

제발트의 묘사의 힘이 나를 그곳에 있게 했다.

책을 읽는 동안 머릿속에서 내내 흑백영화 한 편이 상영되었다.

 

읽어 보기 전에는 전혀 알 수 없었던 세계가 있었다.

이제 그 세계 안으로 들어선 나는

다시금 그 밖으로 나가야 된다는 사실이 조금은 안타깝고, 조금은 안도한다.

계속 꿈속에 머무를 수는 없으니까.

 

비가 내리는 동안

제발트와 작별을 했다.

마치 비가 일부러 내려주었던 거 같다.

 

그저 무엇이 달라졌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저 조금 다른 시선이 생겼다는 것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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