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기윤에게 최대 관심사는 '멋'
이었다.
멋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그는 상민이를 따랐다. 진정한 멋의 우정이라 믿었던 상민과의 우정은 기윤의
착각이었다.
한동안 소속감에 우쭐했던 자만심은 그들로부터 떨궈져 나오면서
손상되었다.
그리고 그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기 위해 책 속으로
숨었다.
읽지 않고 들고만 다니는 책들을 빌리고 반납하며 그는 졸업식 때 독서왕이라는 타이틀이라도 타고
싶었다.
민재를 만나기 전까지는.
민재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현실에 붙잡힌 채 날지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자신의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갈 태세를 갖춘 그런 청춘이었다.
기윤은 상민에게서 겉멋을 배웠다면, 민재에게서는 속멋을
배웠다.
학교에서의 강요와 학칙과 부당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직했던 그들만의 레지스탕스는 화려하고 무모한
장난으로 오히려 모든 학생들을 더 엄격하고 더 부당함 속으로 몰고 갔다.
급기야 경찰까지 개입한 일련의 사건들이 기윤의 마음을 졸이게 만들
무렵
기윤과는 노선을 달리했던 조용한 레지스탕스 민재는 학교에 대자보를 붙인다. 자신의 이름을
넣은.
조목조목 부당함에 대해 반박을 가하는 그의 글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걸 민재는 이미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