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개인사를 엿보는것이 구구절절하지 않은 것으로는 처음이다.
아마도 저자의 이력때문인 거 같다.
교육신문 편집장으로 재직중인 저자가 기자로서 다져온 글쓰기의 내공이 곁들여진 이 에세이는 기록이기도 하고, 추억이기도 하고, 바람이기도 하다.
은이와 윤이 두 딸의 아빠로서 어느날 시골집에서 족보인 선원속보가 어마어마한 두께를 자랑하면서 냄비 받침으로 용도변경된 장면을 목격하고 아이들에게 뿌리의 역사를 쉽게 들려주겠다는 목적의식으로 시작한 글에 살이붙고 또 붙어 오랜시간이 지난후에야 비로소 책이되었다.
그래서 자그마한 소신이 달나라로 가버렸던 것이다.
재밌고 유익했다.
군더더기 없는 글에 아빠의 애정어린 마음과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추억담이 어우러져 마치 소설처럼 읽혔다.
최초 시작했던 글들은 두 딸들이 어린 나이일 때 쓰여서 그런지 뭔가 알콩스럽고 달콩스러운 느낌들이 담겨있다.
그리고 잊혀진 폴더속에서 잠들어 있던 글들에
2018년 다시 코멘트를 넣어 완성된 글엔 이제는 숙녀가된 딸을 가진 아버지로서 걱정의 마음이 좀 더 냉철한 시선으로 담겼다.
개인사이지만
그 개인사에 더해진 시대상이 적절히 스며있어 현대사를 관통한 느낌이 든다.
86세대(80년대 학번. 60년대생)야말로 격변의 시대를 관통한 젊음이 아니던가.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이렇게 멋지게 글로 써준 아빠를 가진 은이와 윤이가 부러웠다.
내 기억속 내부모의 이야기는 단지 이야기로 전해질뿐.
나는 엄마. 아빠. 두분의 어린시절이 어땠는지 별로 아는 바가 없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책을 덮고 가장 아쉬운게 있다면
아빠에 대한 이야기는 있지만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는 것.
무릇 족보란게
아버지 가계도인것을 감안하더라도
딸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이렇게 멋지게 풀어 놓으실 수 있었다면
엄마의 기록도 함께였다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겼다.
아마도 이 책을 읽고 윤이가 물었을 거 같다.
"근데 왜 엄마 이야기는 없어?"
이 책을 읽으며 떠오른 키워드가 있다.
밥상머리교육.
저자와 부인 모두 교육계와 관련이 있어서인지
아이들과 차 한잔 마시며 그날 있었던 일들을 서로 얘기하는 시간을 갖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저녁을 다 같이 먹고
차 한잔 마시며 나누는 담소가 아이들에게 피가되고 살이 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위대한 업적을 가진 이들이 역사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묵묵히 자신이 선 자리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켜낸 수많은 개인들이 역사를 지키고, 만들어 내는 것이다.
여기 묻혀질뻔했던 지극히 사소한 개인사가 있다.
달나라로 간 소신.
이 소신에 묻어갈 수많은 현시대 아버지들이 보인다.
그들 역시 이분과 그리 다르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을 것이기에.
꿈꾸던 세상에 꿈은 없고, 바라던 세상은 오지 않을것 같은 시간을 버틴 것은 내게 주어진 가족보다 내가 만든 가족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식구들이 살아야 하기에 집이 있어야 했고, 그 식구들이 살아야 했기에 감취진 용기를 드러낼 엄두가 없었다. 누구에게 털어놓지도 못한 미련한 소신을 아직까지 부여잡고 있는 것 또한 그런 이유일 것이다. 86세대는 그런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