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 스트라이크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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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계속 빼앗길 수 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면, 그야말로 지요의 얘기처럼 능력 대신 평화가 보장되는 게 나을 것도 같았다. 원해서 그런 힘을 갖고 태어난 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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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길 것이 남아 있는 한, 도시가 존재하는한 완전한 평화란 익인들에게 꿈만 같은 이야기.

 

 

 

날개에 치유의 능력이 있는 익인들.

키는 작지만 커다란 날개와 힘이 도시인들보다 센 익인들은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하며 그들만의 땅에서 나고 자라는 것들을 도시에 공급하며 산다.

 

은각과 미과

은각은 은각마가 죽으면 그 눈동자를 세공하여 만든 보석이고

미과는 일종의 마약성분처럼 기분을 좋게 하는 나무 열매이다.

도시인들은 이 보석을 얻기 위해 은각마를 잡아다 억지로 교배하는 실험도 했으나 그들이 원하는 바를 갖지는 못했다.

 

힘이 있어도 그 힘을 이용하지 않는 익인들

그 힘의 원천을 알고자 하는 도시인들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사건은 벌어진다.

 

이방인.

 

익인과 도시인 사이의 혼혈.

몸집은 도시인들과 비슷하지만 날개는 턱없이 작아서 익인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는 비오.

 

현 시행의 배다른 동생이자 눈에 띄어서는 안되는 존재 루.

 

이 두 사람의 만남은 도시인에게 잡힌 비오가 루를 납치하여 탈출하면서 이어진다.

이를 통해 루는 도시인으로서 익인들의 삶을 이해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두 이방인이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은 익인들의 공간에서 펼쳐진다.

 

늘 조심하고 눈에 안 띄기를 바라며 살던 루에게 익인들의 공간은 그녀를 받아들이고 그녀 자체로 봐주는 이들의 품에서 한없는 자유를 누리게 만든다.

비오와 루.

이 두 사람의 마음은 이어질까?

그들을 반대하는 이들은 없을까?

 

 

코앞에서 들여다본 것은 아니었으나 청년들의 담갈색(비오는 갈백색) 어깨와 등은 정말이지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과 똑같이 근육의 움직임에 따라 꿈틀거릴 뿐이었다. 그 어깨에 날개가 따로 비집고 나올 만한 상처나 절재선은 없었고 등판이 깃털로 뒤덮여 있지도 않았다. 그들의 날개가 어디에 감추어져 있다가 솟아 나오는지, 모든 것을 인과 논리로 분석하려는 도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의문을 품고 때론 뜯어보고 싶다는 폭력적인 열망마저 품게 되는 게 큰 무리도 아니겠다는 위험한 생각이 들었다.

 

 

 

두려움은 그것의 실체를 파악해야만 사라진다.

익인들의 날개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평상시엔 도시인과 똑같은 모습이지만 그들이 날고자 할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서 그들을 날개 했다.

도시인들 중 누군가는 분명히 그것을 이용하고자 하는 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익인들의 무덤을 파헤치고 그것을 항의하러 간 익인은 실종되었다.

도시를 관장하는 시행은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짚이는 자는 있었다.

도시의 무력은 익인들의 평화를 깨기 위해 행진할까?

자신들의 잘못을 무력으로 입막음할까?

시행의 동생을 납치한 자를 잡아들이기 위해 도시인은 무엇을 하게 될까?

 

 

베푸는 겁니다. 무엇이든 나눠 주는 거지요. 자기가 가진 거라면 하다못해 한 줌의 체온이라도 말입니다. 조각내서 나눠 줄 수 없으니 그 순간 눈앞에 있는 당신에게 최선을 다해서 마음의 전부를 주는 것, 그게 우리의 본성입니다.

 

 

 

존재를 이렇게 온 마음으로 대하는 종족이 이 세상에 남아 있을까?

이렇게 각박한 세상에서 이토록 다정한 종족을 이야기 속에서라도 만날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그들이 가진 치유의 능력 또한 생명을 살리는 데 있어 자신들의 온 힘을 나눠주는 것이기에 그래서 더 소중하게 여겨졌다.

그런 그들에게 가해지는 도시인들의 욕심이 점점 부풀어 올라 멸종해가는 그들을 일망타진할 것만 같아서 조마조마하는 마음을 부여잡고 책장을 넘겨야 했다.

 

 

 

삶의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 무언가는 옳고 바람직하거나 다른 것은 그릇되다는 것을 말하지는 않아.

 

 

 

 

이 이야기의 가장 아름다운 것은 바로 이 문장이다.

다름을 올바르게 정의한 것.

그리고 그것을 따르도록 결정할 수 있는 결정권을 가진 자의 마음가짐.

그래서 이 이야기를 손에서 놓고도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나 보다.

 

다른 것과의 공존.

그것을 이해하는 힘 때문에...

 

 

그 어떤 새도 영원히 허공에서만 살 수 없고 언젠가 땅에 두 발을 디디고 내려앉아야 한다면, 네가 그의 유일한 영토이니까.

 

 

 

사랑을 이렇게 멋지게 표현해도 되는 건가요?

날개를 접을 수 있는 유일한 영토.

나는 누군가의 진정한 영토일까?

아님 나는 내가 안착할 수 있는 진정한 영토에 발을 디디고 선 게 맞나...

 

 

 

한군데 정박하지 않고 앉은 자리를 끊임없이 박차고 떠나는 거야말로 날개를 가진 자의 운명 아닐까.

 

 

 

그 운명을 이해하는 자는 날개가 없어도 그 날갯짓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다.

 

이야기 곳곳에 담겨있는 메시지는

다름의 이해와

공존의 이해와

사랑의 이해와

기다림의 이해였다.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잔인하고 잔혹하고 숨 가쁜 이야기에 숨 막혀하던 마음에

오랜만에 단비를 뿌려주고 나니 마음이 한층 유해진 기분이다.

 

구병모 특유의 문체는

마치 무성영화를 틀어 놓고 변사가 그 내용을 이야기해주는 느낌이다.

우스꽝스러운 목소리가 아닌

감성 풍부한 목소리로 익인과 도시인의 상반된 모습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다독거리는 모습을 설명해주어서

듣는 이들의 가슴에 온화한 기분을 선사해주는 느낌이다.

 

날개를 가진 자도

날개를 갖지 못한 자도

모두 날 수 있는 이야기.

 

버드 스트라이크.

 

또 하나의 완전한 꿈이 완성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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