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폭조항 LL 시리즈
쓰키무라 료에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미스터리와 SF의 황홀한 결합!

 

왠지 뭔가 엄청 있어 보이는 카피

615페이지의 분량을 자랑하는 황금가지의 신간으로 신감각 SF 경찰 소설이다.

전작은 읽지 못했으나 경찰 범죄 소설을 개별적인 이야기라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근 미래

근접 전투에 맞게 개발된 2족 보행형 병기인 기갑 병장이 발달하고 이 기술을 도입한 드래군이 창설된다.

경시청은 특수부대를 조직하고 그 특수부대원들의 활약을 그린 것이 첫 번째 이야기 기룡경찰이다.

 

자폭조항은 기룡경찰 시리즈 2편으로 첫 장면부터 대량 살상이 발생되며 시작한다.

특수부대가 조직되고, 기갑 병장에 탑승할 수 있는 대원들은 모두 용병들이다.

일본인이지만 일본에서 살아 본적 없는 스가타

러시아 경찰이었던 유리

그리고 테러리스트 라이저

이 세 사람만이 기갑 병장에 탑승할 수 있다.

 

다이코쿠 부두에서 밀수품을 하역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세관을 비롯 경찰과 관계자들이 모두 학살당하고, 학살의 주동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리고 그곳에 기모노란 명칭이 붙은 기갑병장이 밀수품으로 들어와있었다.

영국 고위직의 방문을 앞둔 시점에서 벌어진 기갑병장 밀수는 모두의 촉각을 곤두서게 만든다.

 

오키쓰의 지휘 아래 밀수사건을 조사하던 특수부에 수사 중지 명령이 내려진다.

 

 

 

 

 

경찰이라는 닫힌 조직 안에서 특수부 현장 수사원들이 겪는 비난과 해코지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것은 현장뿐만 아니라 이사관인 미야치카와 시로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지하철 노성 사건 이후로 더욱 그렇다.

 

닫힌 조직 경찰 내에서 특수부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나는 특별한 인재들만 모인 곳이 특수부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배척당하고, 적대시하는 조직인 줄 몰랐다. 모든 경찰들의 못마땅한 시선을 받으며 모임에서도 제외당한 형사들의 심정이 건조하지만 절절하게 그려진다.

어쨌든 유능한 지휘관 오키쓰는 명석한 두뇌와 외교부에서 갈고닦은 실력으로 굴하지 않고 교묘한 방법으로 수사를 계속 진행시킨다.

그리고 부두 밀수 사건의 배후에 아일랜드 IRF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라이저 라드너.

전직 테러리스트. 사신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IRF에 몸담았다가 조직을 이탈한 라이저는 그들에게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배신자는 직접 처형하는 게 IRF였다.

그녀 앞에 그들이 나타난다. IRF의 결성을 주도한 자이자 시인인 킬리언 퀸. 그가 처형단을 이끌고 그녀를 찾아왔다.

 

 

 

이가 딱딱 떨릴 만큼 한기가 돌았다. 공포였다. 킬리언 퀸과 세 수행원들은 공포를 남기고 갔다.

하지만 라이저가 이토록 떠는 것은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먼 과거에 자신이 저질렀던 죄 때문이었다. 그것은 텅 빈 영혼 속에서 줄곧 되울리던 잔향이기도 했다.

 

이야기는 현재의 도쿄 상황과 라이저의 과거를 오가며 진행된다.

일본 소설의 매력이라고 해야 할까? 건조함과 딱딱 끊어지는 문체 때문에 거부감이 있었는데 이 쓰키무라의 글은 색다른 재미를 준다.

마치 유럽 작가와 일본 작가의 콜라보라고 할까?

도쿄 현재를 그릴 땐 경직된 느낌과 건조함이 곁들인 문체인데, 라이저의 과거를 그릴 때는 마치 문학작품을 읽는 것처럼 섬세하고 사실적인 묘사로 꽤 감상적이다.

그래서 하나의 소설에서 두 가지 이야기를 맛본 느낌이다.

 

자폭조항에서 라이저만큼 강렬한 캐릭터는 킬리언 퀸이다. 마치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를 섞어 놓은 거 같은 이 인물은 시인이다. 시인으로 이름을 날리고 그 명성으로 조국을 위한 투쟁에 앞장선다. 모두가 그런 줄 알았다.

 

 

뭐가 시인이야..... 이건 살인마야.

 

 

 

교묘한 말로 상대를 현혹시키고, 현혹된 상대를 테러로 이끌고, 그 상대의 가장 아끼는 것을 제거함으로써 더 이상 존재의 이유를 말살시키고 그러한 모든 걸 아울러서 자신의 필요에 따라 목숨을 바치게 만드는 악랄한 수법을 통해 인간의 영혼을 갈취하는 살인마 킬리언 퀸. 그런 퀸에게서 도망친 라이저를 처형하기 위해 그가 직접 찾아왔다.

과연 그의 속내는 무엇일까?

 

이 시리즈 기대된다.

촘촘하게 엮인 인과관계들과 보이지 않는 "적"으로 인해 이야기가 점점 더 흥미로워질 거 같기 때문이다.

경찰 조직 내의 "적"인지 국가 정부 내의 "적"인지 알 수 없는 적은 때론 아군이 되었다가 때론 적군으로 돌아서기에 도통 정체를 알 수 없다. 하지만 오키쓰는 이미 "적"의 정체를 희미하게나마 윤곽을 잡고 있는 거 같다. 단순한 경찰 소설일 줄 알았는데 더 깊은 무언가를 담고 있다.

 

자폭조항은 기갑병장에 숨겨진 비밀과 그에 탑승할 수 있는 사람이 왜 용병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일본 특수부대의 비밀 병기를 일본 경찰이 아닌 용병이 담당해야 하는 이유.

 

 

고작 5년 때문에. 5년 뒤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일반화될 기술인데. 5년의 우위를 위해서 사람 목숨을 버리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미도리는 군사 세계에서 통용되는 그 논리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작가는 자폭조항을 통해서 겉돌고 있는 특수부 내의 인물들이 좀 더 서로를 알아가게 되고, 각자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드러나면서 전우애를 느끼게 되는 틈을 주어 경찰 조직 내의 왕따 집단인 특수부대원들 간에 신뢰를 쌓아가는 단계를 마련한 거 같다.

 

내부의 "적"을 어디까지 추적할 수 있을까?

전작의 기룡경찰을 찾아 읽어야겠다.

일본 소설에 맛 들이게 만든 자폭조항.

다음 편을 기다리게 만드는 자폭조항.

모처럼 기다림이 즐거울 거 같은 새로운 시리즈를 알게 되어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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