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서광들
옥타브 위잔 지음, 알베르 로비다 그림, 강주헌 옮김 / 북스토리 / 201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애서광들은 책을 사랑하고, 아끼고, 모으는 사람들의 다양함에 대한 이야기다.
11편의 단편들이 다양한 감성의 애서광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이 소설의 화자는 아마도 옥타브 위잔 자신인 거 같다.
이야기에 "나" 라는 화자가 등장하는데 정작 "나"에 대해선 이름이 나오지 않으니 말이다.

책을 사랑하면, 책을 모으게 되고, 그러다 보면 본의 아니게 수집가가 된다.
물론 전문적인 수집가들은 따로 있지만.

이 애서광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바로 그 에서광때문에 상처받은 사람의 이야기다.
시지스몽의 유산에서 이 상처 입은 여인의 잔인한 복수극이 펼쳐진다.
시지스몽의 상속자이자 약혼녀였던 앨레오노르는 결국 결혼하지 못하고 시지스몽의 상속자가 되었다.
50이 넘도록...

18~19세기에 50이 넘도록 결혼을 하지 못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할만하다.
시지스몽은 결혼도 미룬 채 평생을 책을 수집했다. 그런 그가 죽고 나서 그 책들을 약혼녀에게 상속한다.
시지스몽은 그의 책들은 절대로 팔 수 없으며, 일 년에 한 번 그의 생일에 장서벽을 가진 친구 몇몇에게만 그의 서재에서 12시간을 지낼 수 있다고 유언을 남긴다.
그의 장서벽 친구들은 어떻게든 그의 책들을 가져오기 위해 계획을 세운다.
가장 기발한 계획은 그의 상속자인 엘레오노르와 결혼해서 그 서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정말이지 끝간데를 모르는 사람들의 행태이다. 엘레오노르를 두 번 세 번 농락하는 일이라는 걸 그들이 알턱이 없다.
그리고 그들을 향한 엘레오노르의 잔인한 복수극이 펼쳐진다.
그녀의 기발한 복수극에 망가지는 책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지만. 한편으로 통쾌하기도 했다.
책이 아무리 소중하다 한들 사람이 먼저란 걸 잊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었으니까.

이 책에는 수많은 저자의 이름과 작품의 이름이 나온다.
거의 19세기 이전의 것들이라 잘 모르는 작가와 작품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나폴레옹 1세의 수첩에서는 우리가 아는 바로 그 나폴레옹이 등장한다.
아마도 사실에 기반을 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1871년 5월 23일 튀릴리 궁전이 함락되고 그 과정에서 불타오르는 궁의 약탈이 시작된다.
시민군의 한 병사는 불타는 궁전을 보면서 약탈당하는 보물들을 보면서 그제야 자신들이 한 짓이 어떤 것인지 깨닫는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병사는 남김없이 타버릴 그 궁의 모든 물건들을 바라보며 기념품을 챙겨야겠다고 생각하고 상자 하나를 가지고 나온다. 그러나 그는 결국 총을 맞고, 죽음을 기다리는 동안 옆에 있던 H 백작에게 그 상자를 건넨다.
그 상자 안에는 책이 3권 있었지만 도망치는 와중에 2권은 잃어버리고 한 권만 남았다.
병사는 죽고 H 백작은 그 책을 자신의 가방에 넣어둔다.
병원에서 정신이 든 백작은 그 책을 펼쳐보다 그것이 나폴레옹 1세의 수첩 중 한 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예부터 큰 야망이 없었다. 나를 현재의 위치에 끌어올린 것은 상황이었다. 그렇다. 나는 당장이라도 황제직을 내려놓고 싶다. 이 세상의 허영과 공허를 내던지고, 백작부인이 동의한다면 그녀와 따뜻한 고향에 돌아가 오손도손 함께 살고 싶다.

 

 

나폴레옹이 이렇게 전원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걸 나는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조용하고, 사색적인 사람이었고, 전쟁보다는 평화를 그리워했으며 자연 속에서 고요한 삶을 살기를 바랐던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현지에서 사랑을 조달하고, 멀리 있는 사랑에게도 아낌없는 사랑을 전했던 바람돌이기도 했다.
위에서 말했듯 나폴레옹은 정말 자신의 욕망이 아닌 상황에 의해 전쟁을 감행했을까?
그의 나머지 수첩이 미국에 보관되어 있다는 각주를 보면 이 이야기가 근거 없이  쓰여진건 아닌 거 같다.

책의 종말에서는 나름의 수집가들이 모여 미래를 예견하는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에서 예견한 것들이 현재에 실존하는 경우도 있어서 옥타브 위잔의 예리함이 돋보이는 이야기였다.

인쇄술이 이미 최고점에 이르렀기 때문에, 우리 종손들은 인쇄로 책을 만들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때쯤이면 인쇄술이 시대에 뒤진 방법이 될 것이고, 지금은 아직 초기 단계에 있는 사진에 의해 쉽게 대체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단한 통찰력이다.
책이 사라지고 사진으로 대체될 거라는 생각.

셀룰로이드로 만든 펜대처럼 가볍고, 5~600단어를 담아내는 원통형 기록 장치가 만들어질 겁니다.
주머니에도 너끈히 들어갈 겁니다. 여기에 어떤 목소리라도 복제될 겁니다.
개개인이 전기를 보유하게 될 겁니다. 어떻게든 교묘하게 전기를 휴대해서, 주머니에 넣거나 목이나 멜빵에 걸친 작은 장치를 쉽게 작동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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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그라프에 대해 말씀드리면, 저자가 직접 편집자가 될 겁니다.
저자는 자신의 작품을 낭송한 소리를 원통에 녹음하고, 판매허가를 얻은 원통을 직접 판매할 것이고, 원통은 소비자에게 우편으로 전달될 겁니다.



 

유튜브, 전자책, 오디오북, 독립출판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예견.
그  앞에서 나도 나름의 미래를 예측해보지만 머리만 복잡해질 뿐.
그럼에도 종이책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종이책이 주는 그 느낌들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애서광들은 나에게 다채로움을 주었다.
다양한 생각방식을 건드려주었고, 책에 대한 욕심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주었다.
무언가를 광적으로 좋아한다는 것에 대해 나는 그렇게까지 광적인 사람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나는 그냥 애서가일뿐
애서광은 되지 못할 거 같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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