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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등록자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7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8년 10월
평점 :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8/1112/pimg_7368641352046761.jpg)
"어느 세상에나 신분이란 게 존재해. 인간은 결코 평등하지 않아."
가구라는 고개를 숙였다. 온몸에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모든것을 쏟아 만들어낸 DNA 수사 시스템이 계급 제도를 강고하게 만드는 도구였을 뿐이라니.....
도예가의 아들로 태어난 가구라.
그의 아버지는 장인이었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로 로봇이 그의 도자기를 똑같이 복제해 내자 영혼 없는 복제품은 진짜를 이기지 못한다는 그의 신념은 그를 TV 앞에 세웠다.
로봇이 복제한 작품과 자신의 작품은 분명 구별할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은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TV 앞에서 무너졌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구분은 어려웠다.
가구라는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고 그가 믿었던 예술의 영혼보다는 과학을 신봉하게 된다.
국가가 국민의 DNA를 관리한다.
범죄를 가리기 위해서만 사용한다고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법을 만든 자들은 법망을 빠져나가는 길을 만들어 놓는다.
그것이 플래티나 데이터이다.
국가의 기밀로 지정되어 몰래 시스템을 구축해오던 그들은 그들의 무기를 세상에 내보낼 준비를 시작한다.
범죄현장에서 발견된 범인의 증거를 이 시스템에 입력하면 범인의 몽타주까지 사진처럼 나오는 게 이 시스템의 장점이다.
이 시스템 구축에 앞장섰던 가구라.
하지만 의문의 살인이 계속되고, 범인은 그들이 가진 데이터에서 분별이 되지 않는다.
NF13으로 명명된 범인을 찾기 위해 발로 뛰는 아사마 형사
조작된 증거로 범인으로 몰리게 되는 가구라
이들은 이 짐작하기 어려운 사건을 어떻게 풀어 나갈까?
섬뜩하다.
생각할수록 미래에 대한 공포가 현실화되는 거 같아서 두렵다.
플래티나 데이터의 존재가 무엇인지 밝혀지는 지점에서는 나도 모르게 온갖 감정이 복받친다.
디지털이 많은 것들을 바꿔 놓았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많은 생활의 편리를 가져왔지만 반대로 많은 소중한 것들을 밀어냈다.
우리 삶에서...
좋은 제도, 좋은 정책, 좋은 법률, 좋은 규칙들을 아무리 만들어 내어도 결국 그것들을 악용하는 사례들은 늘 있어왔고, 늘 있고, 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알다시피 그것들을 악용하는 사람들은 그것들을 만들어낸 사람들이다.
편리함이 결코 안전한 건 아니라는 걸 이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하게 된다.
기술의 발전이 모두를 안전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건 아니라는 것도 깨닫게 된다.
기술의 발전으로 어쩜 모두가 더 불안하고, 불행해지는 건 아닐까?
"공무원은 자기들 일을 편하게 하기 위해 국민 정보를 모으려 들지. 하지만 그렇게 모은 정보를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어. 결국 나쁜 놈들 손에 넘어가 서민만 고통받지."
그저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해서 국가가 편할 대로 모은 정보들이 어떻게 악용되는지는 말해봐야 입이 아플 지경이다.
보이지도 않는 작은 칩에 내 모든 정보가 담겨 있고, 거리 곳곳의 감시 카메라에 노출되어 있으며
집에서도 마음 놓고 휴식을 취할 수 없는 세상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가 얻은 건 생활의 편리함이지만
우리가 잃은 건 진정한 자유가 아닐까?
어디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자유
국가가 국민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이루어진 제도들이 결국은 몇몇의 사욕을 채우기 위함임을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미등록자를 읽고
이 미등록자들에 대해 생각한다.
소수인 그들이 지배하는 다수의 세상.
다수인 우리는 소수인 그들로부터 우리를 지켜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