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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맨 앤드 블랙
다이앤 세터필드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떼까마귀들은
생각과 기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알고 아무것도 잊지
않는다.
윌리엄
벨맨.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아무것도 가질 수 없었던 남자.
그 남자의 운명에 죽음이
드리운 건 어릴 때 장난삼아 새총을 날렸던 그 순간이었을까
10살
소년들
윌리엄, 찰스, 프래드,
루크
그들은 숲속에서 그들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윌이 새총으로 그
떼까마귀를 겨냥하기 전까진.
아무도 윌이 그 먼 거리의
그 떼까마귀를 맞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윌 자신도 자신이 총알이
빗나가길 바랐고, 민감한 떼까마귀가 기척을 느끼고 날아가길 간절히 바랐다.
살생.
그것에 대한 애도 없이
소년들에게 그 죽음은 색과 찜찜함으로 남았다.
벨맨 가문의 남자의 이름은
세 가지였다.
폴, 필립,
찰스
윌이 아버지 필립은
어머니의 사랑은 듬뿍 받았으나 아버지의 사랑은 받지 못했다.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라와 결혼했지만 부모의 축복은 받지 못했다.
아들을 낳은 뒤 그는
부모의 마음이 돌아설 거라 믿었지만 그들은 돌아서지 않았고, 필립은 벨맨가의 이름을 아들에게 전해주지 않았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다른 이름을 지어주었다면, 분명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게지.
부잣집 둘째 도련님은
부모님의 냉대화 가난을 견디지 못했다.
그는 아내와 아들을
남겨두고 도망을 쳤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무도
몰랐다.
윌이 자라서 청년이 되면서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오르내리던 소문은 더 이상 회자되지 않았다.
윌은 필립을 쏙 빼어
닮았으니까.
윌의 백부 폴은 윌을
자신의 아들 찰스보다 더 미더워했다.
찰스는 방직공장에 미련이
없었고 다른 곳에 마음이 있었다.
윌은 사업을 하는데
천부적인 자질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윌을 인정하지 않았다.
죽음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할아버지의 죽음은 윌에게
날개를 달아 주었다.
딱히 그를 애도할 이유가
없었다.
그가 막 비상을 시작하려
할 때 그의 어머니 도라가 죽음의 세계로 갔다.
아직은 어린 윌은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그녀를 애도하지도 못했다.
그는 슬픔을 일로
승화시켰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그는 로즈라는 여자와 사랑에 빠졌고, 그들은 결혼했다.
윌이 행복에 빠져 있을
때쯤 그의 친구 루크가 한 겨울에 물에 빠져 죽었다.
떼까마귀의 시체를 들추며
장난을 치던 루크였다.
루크의 장례를 치르고 그는
그 일을 잊었고, 더 일에 매달렸지만 그에겐 가족이 있었다.
행복감을 느낄 때 그의
백부 폴이 죽었다.
그의 일이 윌에게
떨어졌다. 윌은 백부의 죽음 앞에서 공장일만 생각했다.
그의 빈자리를 그가 메꿔야
했다.
그리고 그는 진정한
벨맨씨가 되었다.
윌이 참석하는 장례식마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나타났다.
하지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윌 조차도 그 남자를
설명할 수 없었다. 단지 그 남자를 보았다는 기억만 있을 뿐, 그 남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었다.
죽음은 그를 좀먹어
갔다.
슬픔을 슬퍼하지 못하는
윌은 더욱더 일에 매진했고, 그 결과는 그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그가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를 떠났다.
열 살 이후로 죽음은
끈덕지게 윌의 곁에 머물렀다.
그가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마치 그러면 안 된다는 듯이.
열병이 도시를 휩쓸고 그는
세 아이와 아내를 잃었다.
그들을 애도할 시간도 없이
그의 마지막 자식이자 맏이인 도라가 사경을 헤매었다.
그 무렵 그는 블랙을
만났고, 만취한 벨맨은 블랙과 협상을 시도했다.
정말
그랬을까?
죽음에 대한 소년의
죄책감이 블랙이라는 환상을 카웠을까?
그것이 하필이면
떼까마귀라서 더 마음에 그늘을 드리운 건 아니었을까?
떼까마귀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고 가는 길잡이였다.
벨맨은 블랙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벨맨&블랙이라는 거대한 장례용품점을 차린다.
마치 죽음의 성당 같은
위용을 자랑하는...
그것으로 그는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했다. 그와 도라의 시간을...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찾아오니까요. 그게 곧 미래죠. 안 그런가요? 나의 미래. 당신의
미래. 모두의 미래.
미래의 끝은
죽음뿐이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모두가
외면하는 사실이었다.
죽음을 팔고 애도를
전시하는 벨맨&블랙은 성공을 거둔다.
그리고 성공 가도를
달릴수록 벨맨은 더욱더 두려움을 느낀다.
죽음이 비껴가도록 그는
최대한 몸을 낮췄다.
일에 몰두하며 이윤을
블랙과 똑같이 나누었다. 나중에 그가 나타나면 그에게 줄 요량으로.
그는 블랙의 아이디어를
차용했다고 생각했고, 나중에 그것이 어떻게 자신에게 죄를 물을지 겁을 먹었다.
그리고 그의 친구들은 젊은
나이에 남김없이 생을 마감했다.
그때
그
장소에서
그 죽음을 함께했던
그
소년들...
한 인물의 일대기를
말하면서 늘 죽음을 염두에 둔다는 건 어떤 걸까?
세터필드의 두 번째 작품
벨맨&블랙은 이야기의 깊이를 알아채기엔 조금 난해했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공감과 동시에 거부감을 남긴다.
죽음이 미래라는 그녀의
말은 옳지만, 그 옳음을 되새기며 살아가긴 싫다.
벨맨은 자신이 아꼈던 모든
이들의 죽음을 애도하지 못했다.
슬픔을 느끼는 대신 일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쌓인 슬픔은
그를 죄책감에 시달리게 했고, 다른 사람의 슬픔을 애도하는 상점을 짓기에 이른다.
정작 자신은 애도할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외면 하지만.
죄책감과 외면이 다른
곳에서 성공했다 하더라도 결국 자기 자신을 구하진 못한다는 뜻이다.
상실감을 감추려 노력한다고
해서 그 상실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남자는
그 죽음을 팔면서 부유해진다.
그렇다고 그가 그 부를
맘껏 누린 것도 아니었다.
그는 죽음에게 빚이
있었다.
그 빚을 갚고자 그는
열심히 일했고, 한없이 자신을 낮추었다.
죽음과
돈
둘 다 피해 갈 수 없는
운명의 짐이다.
벨맨을 통해서 세터필드가
말하고자 했던 건 뭐였을까?
죽음에 대한 경건함이
아니었을까?
다른 사람의 죽음을
공감하지 못하고, 그 죽음에 애도하지 못하고 돈만 좇는 우리에게
그녀는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죽음을 경계하기 위한 가장
최선의 방법은 죽음에 대한 경건함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