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동물원
진 필립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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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말리는 신간이 나왔다.
밤의 동물원.
시종일관 조마조마한 감정을 달고 책을 읽었다.


동물원 폐점 시간이 다 된 시간
아이와 함께 동물원에서 시간을 보내던 조앤은 아들 링컨을 데리고 동물원을 나가려 바쁘게 움직인다.
사람 발길이 드문 그들만의 조용한 장소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향하던 조앤의 눈앞에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져 있다.


마침내 그가 움직이자 어쩔 수 없이 그 움직임이 눈에 띈다. 남자가 화장실 문을 걷어차고 팔꿈치를 들어 문을 붙든다. 오른손에 총이, 라이플총처럼 길고 검은 총이 쥐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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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링컨을 꽉 붙들고 안아올린다. 아이의 두 다리가 그녀의 엉덩이에 부딪히며 무겁게 흔들린다. 그녀는 링컨의 엉덩이 아래에서 오른손으로 왼쪽 손목을 잡아 두 팔을 연결한다.
그녀는 달린다.


아이를 안고 달리는 조앤은 무장괴한의 손에서 도망칠 수 있을까?
넓고 무수한 동물들로 가득한 정글 같은 동물원은 과연 무장괴한보다 안전할까?
무장괴한이 원하는 건 뭘까?

어떤 단서도 주지 않는다.
그래서 더 긴장이 느껴지고 머릿속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분주해진다.


아니, 필요한 건 도망칠 공간이 아니다. 누군가 그들을 발견한다면 아무리 달려봐야 소용없다.
바로 이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그녀의 뇌리를 스친다. 혼비백산하는 와중에도 뇌가 제 기능을 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렇다. 아무리 달려봐야 소용없다. 보이지 않게, 아주 잘 숨어야 한다. 누가 바로 옆을 지나가더라도 보이지 않게, 그녀에게는 토끼굴이 필요하다. 벙커가. 비밀 통로가.


그녀는 얼마 전 죽은 호저의 전시관이 비어있다는 생각을 해낸다. 그곳 바위로 가려진 부분에 숨어서 이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경찰이 곧 올 테니까...


하지만 무장괴한들은 동물원 구석구석을 순찰하며 눈에 띄는 사람들에게 총질을 한다.
조앤과 링컨이 숨어 있는 호저의 전시관에도 예외는 아니다.
두 명의 앳된 무장괴한이 전시관을 찾아왔지만 숨죽여 숨어있던 조앤과 링컨을 찾아 내진 못한다.
조앤과 링컨은 토끼굴에서 경찰이 이 사태를 수습하고 나갈 수 있을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될까?

엄마와 아이.
그 끈끈한 유대감.
긴박한 상황에서 살기 위해 질주하는 엄마와 그 엄마를 도와 힘든 상황을 잘 참아주는 링컨이 나는 기특하면서도 그래서 더 조마조마했다.
아이의 집중력이 그리 오래가는 것도 아니고, 아이는 금방 싫증 내고, 짜증 낼 테니.. 그게 언제가 될지가 나는 무장괴한의 움직임 보다 링컨이 내는 소리에 더 심장이 쫄깃해졌다.
이 상황에서 그녀의 남편 폴은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고 전화로 생사 여부를 확인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도 새롭다.
보통 이런 경우의 이야기엔 아내와 아이를 위해 맹목적으로 사건에 뛰어드는 그런 아빠가 있을 법도 한데 말이다. 그리고 그런 경찰도.

케일린은 매점 알바다. 그날 엄마에게 핸드폰을 빼앗기고 출근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질 줄 몰랐다.
그녀는 혼자다. 핸드폰이 있으면 절대 혼자가 아니지만.

마거릿은 매일 동물원을 걷는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른 날과 다르다.

즉시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낀다. 긴장이 되지만 또렷한 이유는 없다. 자신의 신경을 거스르는 게 그저 침묵과 고요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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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언덕을 오르기 시작하며 긴장을 떨쳐보지만 꼭대기에 이르기도 전에 두 차례 빠른 소리가 들린다. 정전기가 작게 터지는 소리, 혹은 천둥 치는 소리, 거의 동시에 목소리가 들린다. 높고 더 단일한 음정. 비명이라고는 못하겠다.


 

 

극한의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양심을 지닐 수 있을까?
핸드폰 불빛 때문에 토끼굴이 위험에 처해지고, 범인들에게 은신처를 들킬 지경이 된 조앤
게다가 링컨은 배가 고프다고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핸드폰으로 괴한들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다시 도망을 치기 시작한 조앤은 어느 쓰레기통 안에서 버려진 갓난아기를 발견한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그들을 노출시킬 터였다.

그녀는 아기를 조용히 시킬 수 없어 포기했다. 자기 한 몸을 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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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앤은 격렬히 그녀를 증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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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각적인 반응이 가라앉자 쓰레기통도 그렇게까지 끔찍한 은신처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말 그대로 여자가 자기 아이를 버렸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만 있다면 쓰레기통은 상당히 기발한 장소였다. 스피커 바로 옆이라 녀석이 원하는 만큼 시끄럽게 소리를 질러대도 아무도 듣지 못할 것이다.

 

 

기다리는 구원의 손길은 그들을 찾아오지 않는다.
남편 폴의 문자로 보건대 경찰은 아직 범인이 몇 명인 지도 파악 못하고 있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아직은 동물원으로 진입할 생각도 없고.

범인들이 총을 들고 살아남은 표적을 찾아 동물원을 돌아다니는 동안
조앤은 자판기에서 꺼낸 비스킷으로 링컨의 배고품을 달래주며 나무들 사이에 숨어있다.
그러다 식당 문이 열리며 어떤 소녀가 그녀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조앤과 링컨, 케일린 마거릿은 그렇게 모인다.
완벽한 은신처
이곳에서 경찰이 오기만을 기다리면 되는 거였다.

범인에 대한 단서를 주지 않은 초반의 설정
그래서 범인들의 실체를 알게 되었을 때 느껴지는 공포가 더해간다.
아무도 누구도 그들이 왜 그러는지를 알지도 짐작도 못 할 테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액션도, 눈앞에 그려지는 대량 학살도, 살벌한 문제점도, 상황을 장악하려는 그 어떤 세력도 없다.
그리고 힘자랑하는 터프가이들도 없다.
그래서 답답하지만 그만큼 조바심이 난다.
조앤도 케일린도 마거릿도 지극히 평범한 여자들이다.
그리고 범인들도 그렇다.

모두 그저 평범한 사람들인데
그날만 평범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 이야기의 매력은 그런 거다.
지독하게 평범한 일상의 반란.

많은 것을 담고 있지만 친절하진 않다.
하나하나 분석하면 각기 다른 이야기가 수십 가지 나오겠지만 그렇게 복잡하게 가지 않았다.
인위적인 것도 있다.
로비와 마거릿의 관계가 그렇다.
그럼에도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계속되는 이야기가 머릿속을 맴돈다.

로비와 마크가 그 다른 각본을 담당했다. 데스틴이 인질극을 연기하며 경찰을 유인하는 동안 로비와 마크는 사냥을 다닌다. 동물원 전체를 놀이터로 삼아 누구든지 죽이고 싶은 사람을, 죽이고 싶은 방식대로 처치한다. 규칙은 없다. 테두리도 없다.
막바지에는 경찰도 자기들이 어떻게 속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자기들이 얼마나 미적거렸는지, 어떤 식으로 대학살을 방치했는지 알게 된다.

 

 

 

콜럼바인 총기난사 사건이 경찰을 모조리 바꾸어놓았다.

진실을 보는 사람이라면 교육을 시도해야 돼. 사람들에게 어떤 테두리에 갇혀 있는지 보여주려면, 어쩌면 그 사람들이 테두리를 넘어서려고 노력할지도 몰라.
로비는 그 생각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얼마나 테두리에 갇혀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범인들의 생각이 어떻든 사람들은 절대 알지 못 할 것이다.
사람들은 테두리 안에 갇혀 있는 걸 선호하니까.
그게 안전하다고 믿는 것이라면 더더욱.


단순한 이야기 구조가 복잡한 이야기를 압도해 버렸다.
밤의 동물원은 단순히 공포와 범죄에 맞서 자신을 보호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았다.
단순히 조바심을 내며 읽고 나면 많은 생각들이 뇌리를 스친다.

사건은 일어나고
그 사건으로 인해 야기된 문제점들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고
그 노력들을 단번에 공격하기 위한 범죄들은 계속된다.
개개인이 그것에 대항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러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조앤과 링컨의 유대감은 가정에서의 노력을
로비와 마거릿의 만남은 교육에서의 노력을
긴박한 와중에도 서로를 도왔던 건 사람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거라 생각했다.
이 모든 게 어우러져야 범죄의 탄생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지 모른다.

당분간 동물원 가는 게 두려울 거 같다.
야간개장에는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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