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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중지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9년 2월
평점 :
책 표지의 나방이 왜 친숙하게 느껴지나 했더니
영화 '양들의 침묵' 포스터에서 얼굴을 익힌 아이다.
해골나방. 아케론티아 아트로포스.
" 그 흉부 뒷면에는 인간의 두개골을 닮은 무늬가 있으며,
날개 길이는 십이 센티미터에 이르고, 색깔은 거무스름하다....
우리는 이것을 아트로포스, 즉 죽음이라고 부른다. " p.232
늘 다양한 주제로 설정된 실험을 펼쳐온 작가는
이번 책에서는 '다음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로 시작하는
실험을 선보인다.
이 분 특유의,
따옴표 없이, 의문부호 없이 길게길게 이어지는 서술방식이나,
인간의, 심지어 개의 심리묘사가 너무도 치밀한 나머지
어려운 철학책을 읽는 듯 착각하게 만드는 특징에도 불구하고
이 '죽음의 중지'는 이전의 작품들보다
눈에 보기에도 얇았고 읽기도 수월했다.
같은 제목의 두 이야기를 읽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해서
똑같은 문장으로 끝이 남에도,
그 두 문장이 주는 의미와 떨림은 판이하게 다르다.
그 두 문장 사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난 아직도, .. 사실은 그걸 생각 중이다.
이 나라(포르투갈이겠지?)에서, 어느 날부터 아무도 죽지 않는다. 몸이 두 쪽이 난다든지 하는, 죽어 마땅할 상황에서도.
죽지 않는다는 것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님을,
그 사회적 혼란을, 소설 앞부분에서 열심히 보여준다.
정치가들, 종교인들, 생명보험사, 마피아..
7개월 째, 일손을 놓아버린 '죽음'은
어느 날 실체를 갖고 나타난다.
방송사 사장에서 편지를 써서
내일부터는 다시 활동을 시작하겠다고 알려온다.
또다시 혼란.
죽음의 활동을 중단했던 이유를 잠시 들어보면,
" 그건 나를 그렇게 혐오하는 사람들에게
언제까지나 산다는 것 영원히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맛을 좀 보게 해주려는 것이었어요. " p.133
대신, 죽음은 앞으로 사람들에게
죽기 전 일주일의 시간을 주기로 한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의미에서.
하지만 죽음이 의도한 바대로,
죽음을 받아들이고 차분히 준비하고 정리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이쯤에서 갑자기 실체를 갖게 된, "죽음"이라는 주인공.
작가가 만든 이 존재는
이전에 내가 읽었던 '사신 치바'나 '책도둑'에 나오는 사신들과
그 이미지와 역할이 비슷하지만, 훨씬 더 구체적이다.
"수의로 몸을 감싼 해골이며..
낡고 녹이 슨 낫과 함께 추운 방에 살고,
방에는 거미줄과 더불어 서류 정리용 캐비닛이 수십 개 있는데..." p.192
그리고, 놀랍게도..이 책에 나오는 사신, 아니 죽음은
여성성을 갖고 있다.
소설의 뒷부분은 죽음 자신의
개인적인 분노와 의문, 의무, 업무 등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 점이 날 혼란스럽게 한다.
물론, 뛰어나게 흡인력있고 재미있지만,
작가는 갑자기 실험 중에 실험실을 뛰쳐나가 버린걸까?
아니면, 그와 관련된 또다른 실험에 빠져들어 버린걸까?
죽음은 너무나 당연하게 수천년간 이어져 온 자신의 업무에서
딱 하나의 예외에 맞닥뜨리고 당황한다.
한 첼리스트가 죽음의 통보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았다.
일주일 후의 죽음을 알리는 자주색 편지봉투가
알수 없는 이유로 죽음에게 자꾸만 되돌아온다.
죽음은, 그 예외적인 사건을 직접 조사하기로 하고
인간의 모습으로 첼리스트의 삶에 뛰어든다.
그리고, 서서히 첼리스트의 삶에 동화되어 간다.
아름다운 음악과 부드럽고 따뜻한 첼리스트의 개.
그리고,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